그런데 놀랍고 두려운 것은 한국 사회가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김일중 교수가 지난 12월에 펴낸 '과잉범죄화의 법경제학적 분석’(한국경제연구원)에는 놀라운 숫자가 나온다. 한국의 전과자 숫자가 무려 1084만명이라는 것이다. 15세 이상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26.5%나 된다. 여기서 전과자란 법원으로부터 벌금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물론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96년만 해도 그 숫자는 606만명이었지만 15년 만에 현재 수준으로 늘었다. 전과자의 급증은 매우 최근에 벌어진 현상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인들이 갑자기 사악해졌기 때문일까? 가장 큰 원인은 행정규제 위반자의 처리 방식에 있다. 그동안 각종 행정규제들이 빠르게 늘어났는데, 규제를 위반한 사람들을 형벌로 다스리다 보니 전과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 김일중 교수의 분석이다. 설득력이 있다. 이제 웬만한 법은 위반하면 기소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기소가 되어 유죄판결을 받으면 전과자가 된다. 가히 ‘거의 모든 것의 범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행정규제 위반자 때문에 전과자가 늘어난 거라면 뭐가 큰 문제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행정규제 위반의 범죄화가 흉악범의 기소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데에 있다. 범죄는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고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검사와 검찰의 능력은 정해져 있다. 검찰이 행정 규제위반 사범을 기소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할수록 다른 범죄를 다루는 데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들어 살인, 성폭력, 강도 같은 강력 흉악 범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에는 매년 4.6%씩 증가해왔고, 그 증가율이 7%대까지 높아졌다. 밤길이 안전해서 자랑스웠던 한국이, 밤길 다니기 무서운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흉악범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명목으로 지키기 어려운 규제들이 대폭 늘어났으니 검사들은 그것을 어긴 행정 규제 사범을 처리하느라 바쁠 것이고, 그 사이 흉악범은 좋아라 하며 설치고 다니지 않겠는가.
이러다가는 형벌의 권위도 사라질 수 있다. 어차피 전과자가 되었는데 한 번 더 형벌을 받은들 어떠냐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법을 만들더라도 벌금 얼마, 징역 얼마 이런 식의 형벌 조항은 함부로 넣지 말길 바란다. 형벌은 살인, 성폭행, 강도죄, 내란 음모처럼 고의로 타인을 해쳤거나 해치려는 자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행정 규제의 위반 같은 사안은 과태료 같은 처벌, 전과자가 될 필요가 없는 처벌로 그쳐야 한다.
무엇보다도 규제 자체를 줄이고 없애야 한다. 시민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은 이제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그것이 선진 시민의식이다.
한국은 물질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의식은 아직 후진국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일만 터지면 시민들은 아직도 정부 탓을 하며, 그러다 보니 정부의 간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국가와 시민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규제를 줄여서 시민이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 불필요하게 범죄자가 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