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난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또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 박자 늦은 정부의 대처 때문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여수 기름 유출 사고에서도 나흘째 되서야 유출량과 유출원인이 밝혀지는 등 정부의 미흡한 초동 조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잇단 대형 사고로 대한민국은 ‘재난 비상사태’에 직면했지만 정부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탓에 국민들의 불안감만 더욱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3일 여수해양경찰서가 발표한 ‘유조선 우이산호 충돌 오염사건’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과 송유관의 충돌사고로 원유와 나프타 등 약 16만4000L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당초 GS칼텍스 측이 사고 직후 밝힌 유출량인 800여리터의 약 205배에 달하는 양이다. 수사 초기 해경이 추정한 1만리터보다도 16배나 많다. 회사나 경찰이 유출량을 적게 추정한 탓에 초기에 적극적인 인력·장비 투입이 이뤄지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전문 검정회사의 검정을 토대로 정확한 유출량이 확인될 경우 유출량 축소 추정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욱이 이번 기름 유출사고는 당국이 나흘이 지나도록 사고 원인과 피해추산도 제대로 하지 못해 주민들의 원망을 샀다. 피해액에 대해서도 해양수산부는 “지금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4일 해수부와 해경에 따르면 바다에 퍼진 기름띠는 대부분 제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안을 덮은 폐유를 제거하는 작업은 앞으로 최대 2주 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4일부터 사고 해역 해양오염 영향을 조사하는 한편 사고 원인을 정밀히 조사해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지만 늑장 대처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보인다. 유조선의 무리한 접안 시도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안이한 초동대처로 피해규모를 키운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수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정부의 또다시 허술한 재난방지체계가 확인됐다. AI의 경우도 철새 이동경로 따라 AI가 발생한다는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지만 발생한지 보름이 지나도록 의심신고가 계속되고 있고 확실한 감염원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 속에 현재까지 살처분된 닭과 오리만 270만마리가 넘어 축산농가들의 피해만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여수 지역의 경우 1995년 여름 시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바로 그 어촌마을이라는 점에서 20여년전 악몽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온다. 갈수록 대형화·복합화 되는 국가 재난으로 인한 국가 경쟁력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