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가? 그래서 위헌인가? 그렇다고 한다. 교원단체, 교육학자 그리고 정치인 등 적지 않은 사람들의 주장이다. 특히 교원단체는 보수·진보를 가릴 것 없이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또 하나 물어보자.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는 것은 위헌인가? 또 국회에 교육 관련 상임위원회를 두는 것은? 묘하게도 이건 또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정치적 결정으로 치자면 교육부 장관이나 국회의 상임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시·도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의 백배 천배가 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립학교법 문제나 최근 말썽이 된 역사교과서에 관한 권한 등이 다 그렇다. 그런데 어째서 대통령의 교육부 장관 임명과 국회의 상임위원회는 합헌이고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은 위헌인가?
분명한 답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러고도 논쟁은 늘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은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는 것이라 결론 난다. 합리적 설명이나 논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적 혐오에 위헌을 주장하는 집단의 조직적 반대가 더해지고, 그 위에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정치권 한쪽의 힘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1996년 이래 교육감을 시·도지사 선거와 분리된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있다. 또 선거과정에 정치조직인 정당이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졌고 우리 교육의 질과 거버넌스 구조도 좋아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1996년 첫 선거의 소위 교황 선출 방식에서부터 1998년의 선거인단제도 그리고 2000년의 학교운영위원 전원 선거 등 별수를 다 써봤지만 선거의 정당성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도 확보할 수 없었다. 매표 행위에 조직 동원 그리고 부당한 영향력 행사 등 온갖 저급한 정치행위가 판을 쳤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임명제로 바꾸고 싶어했다. 교육 소비자의 관심이 큰 상황 아래 시·도지사가 교육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판단에서였다. 오히려 시·도지사의 정치적 책임을 강화하게 되면 정치적 중립성도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또 그렇게 되면 교육재정 확충이나 중앙정부의 부당한 압력 제어 등 지방교육 발전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이 구상은 바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치는 교원단체와 정치권 한쪽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밀고 밀리면서 결국 어정쩡한 방안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현행 제도, 즉 시·도지사 선거와 교육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되 주민 직선으로 치르게 하는 방법이었다.
어정쩡한 안이었으니 결과 또한 어정쩡할 수밖에 없다. 여야 구분도 존재하고, 조직 동원도 된다. 선거과정이나 행정과정에서의 이념적 갈등도 심하다. 말하자면 정치성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책임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책임은 가시성이 낮고 책임이 개인 수준에 머무는 교육감이 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요 정당의 기호인 1번과 2번을 배정받은 후보가 선거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소위 ‘로또효과’다. 이리저리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우리는 제도를 바꾸고 또 바꾸고, 20년 가까이 헤매고 있다. 이래서 되겠는가? 교육감을 임명제로 바꾸라는 말도 아니고 정당 관여를 허용하라는 말도 아니다. 정치혐오라는 국민 정서에 기대 헌법 조항이나 외며 반대하지 말고, 제대로 된 논리에 기반한 제대로 된 안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현행 제도에 대한 옹호도 그렇다. 주민 직선이 좋으면 차라리 선출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논리를 구하는 것이 옳다. 정당 배제가 옳으면 이 역시 효율성이 제1의 기준이라 말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선거제도를 두고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요설을 떨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