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임임원 축하 만찬. 화기애애한 자리였지만 새로운 임원들의 긴장감은 쉽게 감춰지지 않았다. ‘별’을 달았다는 기쁨 반, 삼성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반.
특히 무대 전면의 ‘100년 향한 새로운 출발’이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는 이날 만찬의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올해 쉽지 않은 경영상황이 예고되는 있는 삼성에게 ‘100년’이라는 숫자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컷다.
“불확실한 미래를 다 같이 헤쳐나갑시다.” 이 자리를 마련한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직접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이 부회장은 “다시 한 번 바뀌어야 하는 시기다. 여러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위기론은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상징과도 같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했던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이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연 초 신년사에서도 이 회장은 “5년 전, 10년 전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리자”며 변화를 강조했다. 위기론이라는 아버지의 바통을 아들인 이 부회장이 건네받은 셈이다.
이 부회장이 외친 ‘위기론’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엄살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했다. 2, 3분기 연속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고공행진을 해 왔던 터라 충격의 여파는 컷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는 스마트폰 부진이 가장 큰 요인이다. 증권가는 4분기 삼성전자의 IM(IT·모바일)부문의 영업이익을 약 5조4000억원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분기 6조7000억원에서 약 20%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는 스마트폰의 중·저가화로 프리미엄급 제품의 비중 축소와 가격 하락이 겹친 데 따른 것이다.
올해는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강력한 라이벌 애플이 7억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에 아이폰 공급을 시작한 탓이다. 이는 중국 시장 1위 스마트폰 업체인 삼성전자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한편, 이날 2시간여 진행된 만찬은 윤부근·신종균·이돈주 삼성전자 사장,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모두 참석했다. CEO와 임원들은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환담하며 뮤지컬 배우 남경주씨 등의 공연도 함께 즐겼다. 또 삼성 신임 임원들은 스위스 론진 시계와 신라호텔 숙박권을 축하선물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