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땟골의 얼굴 없는 후원천사’. 조영식(54) 에스디(SD) 바이오센서㈜ 회장의 별명이다.
세계적 진단시약을 만드는 기업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조 회장이 고려인 동포들을 남몰래 도와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 회장이 이들을 돕기 시작한 건 두 해 전 5월부터다.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 친구가 “좋은 일 한 번 해라”라는 말에 함께 경기 안산 ‘땟골’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잘나가던 모기업을 외국에 매각해 큰돈을 보유한 조 회장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조 회장은 “내 도움을 발판 삼아 일어설 수 있는 이들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을 때 고려인들을 만났다”며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허름한 고려인 야학방을 운영하던 ‘너머’의 사정을 보고 곧바로 지원을 약속했다.
“(너머의) 김승력 대표 얘기를 들어보니 참 안됐더라고요. 제가 시드머니(종자돈)를 한 3년간 댈 테니 체계적으로 만들어보라고 했어요. 사무실도 좀 만들고, 무엇보다 한글을 모르는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잘 가르쳤으면 했죠.”
조 회장은 김 대표에서 매달 500만원씩 3년간 지원을 약속했다. 매년 초에는 사무실 컴퓨터와 책상 등 집기를 마련할 금액 1000만원씩 총 3000만원도 지원키로 했다. 현재까지 내기로 한 기부액만 모두 2억1000만원.
조 회장의 도움으로 너머의 사무실은 지하방 신세를 면했다. 여전히 지하공간에서 야학을 열고는 있지만 같은 건물 1층에 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다. 컴퓨터와 책상, 의자도 새로 마련됐다.
땟골의 고려인들은 누군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그저 ‘고려인을 돕는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릴 뿐이다.
“그냥 돕고 싶어요. 돈 낸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면 우습잖아요. 가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어요. 지금은 너머가 잘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좀더 많은 이가 알 수 있도록 문을 더욱 활짝 열어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조 회장은 2011년부터는 모교에 장학금도 전하고 있다. 매년 1억원씩 5년간 지원했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조 회장은 삶을 위한 ‘인프라’를 중요시한다. 본인 역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녔는데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인프라를 만들어놓은 학교와 사회가 고마웠다는 것이 이유다.
조 회장은 고려인을 지원하는 체계가 체계적이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고려인을 위한 전용 학교가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고려인 전용학교를 세우는 일입니다. 젊은이·어린이가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국내와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해외 현지에서 동시에 추진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