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김수현 작가, 여전히 뜨거운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3-12-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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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드라마에서 김수현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특히 드라마 작가들에게 있어 김수현 작가는 작가의 권익을 세워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껏 현역 드라마 작가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고, 그가 만드는 작품들이 여전히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만큼 화제를 불러온다는 점은 실로 놀랍기까지 한 일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작가라고 해도 시간의 힘에 무력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드라마처럼 트렌디하게 유행과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장르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수현 작가의 한계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속사포의 대사들은 현실감을 주기보다는 마치 연극 톤 같은 느낌을 줘 몰입을 방해하고, 여전히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세계관은 현재 해체지경에 이른 가족주의의 시선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고답적으로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가족의 해체를 김수현 작가는 일찍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엄마가 뿔났다’ 같은 작품에서 엄마의 휴업 선언을 선포하기도 했고,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심지어 당당한 불륜을 통해 결혼제도가 가진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으며,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포섭하지 못하는 기존 가족제도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변화하는 가족의 양태를 모색하는 김수현 작가의 시선 속에서 여전히 발견하는 건 가족주의로의 귀환이다. 이번 작품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단적인 사례다. 제목이 도발하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세 번씩이나 결혼하게 되는 여자를 통해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요즘 세대의 결혼관 혹은 인생관을 보여준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오은수(이지아)는 재혼을 했지만 시댁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딸을 친정에 맡기고 살아가는 여자. 결국 오은수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엄마로서의 삶과 여자로서의 삶이 공존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일 게다.

즉 여자로서의 개인적 행복을 위해 딸과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하는 오은수라는 캐릭터는 대단히 도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결혼제도로 복귀하려는 한 여성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왜 그녀는 개인의 행복이 반드시 결혼과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기는 걸까. 혼자 살면서도 얼마든지 당당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아이와 함께 살면서 남자를 만나 사랑하는 삶을 살 수는 없는 일일까. 행복은 반드시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단점은 젊은 캐릭터를 다루는 김수현 작가의 감성이 너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들이다. 한마디로 대사는 화려한데 보여주는 행동이나 삶의 스타일은 지극히 올드하다는 것. 많은 이들은 여전히 김수현 작가가 그려내는 어르신 캐릭터들이 반짝반짝 살아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도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악역이면서도 때론 귀엽게까지 보이는 최여사(김용림)나 오은수의 부모인 오병식(한진희), 이순심(오미연) 같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캐릭터들은 어딘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보일 때가 많다. 이번 작품에서도 시청률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오현수(엄지원) 같은 캐릭터를 빼고는 몰입할 만한 매력적인 젊은 캐릭터가 별로 안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현세대와 호흡해야 하는 드라마로서는 치명적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김수현 작가는 물론 지금도 대단한 작가다. 감히 그 연배에 현역 작가로서 현실의 문제를 첨예하게 담아내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그 뜨거움이 점점 미지근해지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김수현 작가의 한계라기보다는 가족주의 시대의 끝단에 서 있는 우리네 현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수현 작가가 펼쳐 보여주던 그 가족주의를 향수하고 추억할 날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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