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차이나]창전밍 씨틱 회장은?

입력 2013-12-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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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와 이론 겸비한 ‘금융통’… 뼈 속까지 ‘씨틱맨’

중국중신집단공사(씨틱그룹)의 창전밍(常振明) 회장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금융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56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창 회장은 지난 1983년 베이징제2외국어대 일어과를 졸업하고 씨틱그룹 은행부문에 입사하면서 회사와 첫 인연을 맺었다. 1984년 8월에는 일본 다이와증권에서 6개월간 연수를 받기도 했다.

창 회장은 1987년 씨틱실업은행 자금부 부경리(차장)로 승진했다. 1989년 씨틱 뉴욕대표사무처 부대표로 영전했으며 이 기간 뉴욕보험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따기도 했다. 1992년 귀국해 씨틱실업은행 행장 조리(보좌관)와 부행장을 거쳐 1994년 씨틱증권의 전신인 중신증권유한책임공사의 회장에 올랐다. 1년 후에는 정식으로 설립된 씨틱증권 회장과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의 부사장을 겸임했다.

2002년에 씨틱그룹 부총경리(부사장)로 승진했다. 2004년에는 중국 2대 은행인 건설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부회장과 행장을 맡았으나 2006년 다시 씨틱그룹 부회장 겸 사장으로 복귀했다.

회장에 오른 것은 2010년이다. 금융업 전반에 걸쳐 30년이 넘는 경력을 갖고 있지만 회사를 떠난 것은 건설은행에 있던 2년이 전부일 정도로 씨틱그룹에 애착을 갖고 있다. 건설은행을 ‘아시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은행’으로 키웠으나 고향과도 같은 회사를 못 잊어 돌아올 정도로 뼈 속까지 ‘씨틱맨’이다.

창 회장은 또 15세의 나이에 중국 바둑 영웅인 녜웨이핑과 함께 베이징 바둑대표로 뽑힌 이색 경력도 갖고 있다.

1975년에 중국 바둑 국가대표로 뽑혔으며 4년 후 열린 제1회 신체육배 바둑대회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1, 2위인 녜웨이핑과 천주더는 중국 프로 바둑기사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창 회장은 그해 프로 바둑기사의 길을 포기하고 학업으로 방향을 돌려 대학에 진학했다. 창 회장은 이후 1982년 바둑 7단에 오르기도 했다. 창 회장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한다는 인생관을 바둑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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