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여 관중이 숨을 죽였다. 신장 160㎝의 한 동양인 청년이 도마를 향해 달려갈 때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드디어 점프. 청년은 한 마리 새처럼 날아올랐다.
“와!”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듯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16.466이라는 경이로운 점수가 그에게 주어졌다. 누구도 그의 금메달에 이견이 없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체조경기가 열린 노스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신기술 ‘양학선’을 선보인 ‘도마의 신’ 양학선(21)이다.
양학선의 금메달은 이미 예견됐다. 치명적인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금메달은 그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였다. 신기술 ‘양학선’이라는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학선’이 탄생하기까지는 첨단 시뮬레이터의 공이 컸다. 양학선은 남자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위해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하는 신기술 개발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초고속 카메라로 최적 동작을 찾아 완성도를 높였고, 360도 촬영을 통해 실패 확률을 낮췄다.
체육과학연구원 송주호 박사는 “‘양학선’을 완벽하게 성공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과거에는 혹독한 훈련과 감독의 지도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 데이터와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스포츠 현장은 시뮬레이터에서 계측장비에 이르기까지 첨단장비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 먼저 스포츠와 첨단 시뮬레이터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실전은 물론 훈련에서도 시뮬레이터를 적극 활용,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만드는 데 있어 1등 공신이 되고 있다.
국산 스포츠 계측·시뮬레이터 전문기업 비솔의 김시성 과장은 “선수들의 플레이는 갈수록 빠르고 현란해지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는 판독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결국 기계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면서 스포츠 현장은 이제 IT·정밀기기업체의 격전장이 됐다”고 말했다.
골프는 첨단 시뮬레이터로 인해 산업 자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크린골프 대중화는 골프인구 증가로 이어졌고, 아마추어는 물론 프로골퍼도 시뮬레이터를 훈련 장비로 적극 채용함으로써 실전 감각과 스윙분석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병철 골프존 마케팅매니저는 “갈수록 현실에 가까운 시뮬레이터가 개발되고 있다. 미세한 사이드스핀까지 잡아내기 때문에 프로골퍼들의 반응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전 세계 프로골퍼들이 스크린 상에서 샷 대결을 펼치는 스크린골프 월드투어도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이저 테니스대회에서도 첨단 시뮬레이터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시속 200㎞가 넘는 엄청난 속도의 공을 ‘호크아이’라는 전자 판정 시스템이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내 판정 시비를 없앴다.
‘호크아이’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이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2013-2014시즌부터 사용이 결정, 전자 판독기에 대한 의존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계측 장비의 발달도 눈에 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결승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한 우사인 볼트(27·자메이카)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동시에 골인하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결국 사진 판독에 의해 순위를 결정, 계측 장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00m 결승에서는 베로니카 캠벨(31·자메이카)과 로린 윌리엄스(30·미국)가 나란히 11초01로 골인, 사진 판독으로 승자를 가려야 했다. 관중석은 웅성거렸지만 판독 결과는 쉽게 발표되지 않았다. 5분쯤 후 전광판에 공식 기록과 함께 순위가 나타났다. 캠벨은 웃고, 윌리엄스는 울었다. 불과 0.001초차로 승부가 갈렸기 때문이다.
야구와 농구, 배구 등 구기종목에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승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 주동욱 배구 국제심판 겸 대한배구협회 심판이사는 “심판들도 오심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실제로 오심 한 번으로 승부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계측장비 및 시뮬레이터의 발달은 선수는 물론 심판, 관중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