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Time Slip) 구도를 활용한 국내 드라마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타임 슬립이란 용어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5분 후의 세계’(1994)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다. 말 그대로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으로 처음 등장한 이 용어는 과거나 미래의 일이 현재에 뒤섞인 타임 워프(Time Warp)와 차이가 있다.
올해 초 호평을 받으며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이하 나인)’에서는 남자주인공 박선우(이진욱)가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 9개를 얻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박선우는 향을 손에 쥔 채 죽음을 맞이한 형 박정우(전노민)를 발견한 뒤,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향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을 돌리기 위해 그는 고군분투한다.
‘나인’이 현재에서 과거로 간다면, 14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월화드라마 ‘미래의 선택’은 미래에서 현재로 왔다. 큰미래(최명길)는 윤은혜(나미래)의 미래 모습으로 등장해 훗날 결혼하게 될 남자 김신(이동건)과의 인연을 막으려 애쓴다. 또 큰미래(최명길)는 나미래(윤은혜)에게 미디어 재벌로 성장할 VJ 박세주(정용화)와 관계를 쌓으라고 조언한다.
‘옥탑방 왕세자’‘인현왕후의 남자’‘닥터진’등 근래들어 타입슬립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안방극장의 주요한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타임슬립 드라마가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 대한 판타지로 알 수 없는 미래를 전망하거나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시청자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주는 이점 때문이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 속 타임 슬립 효과에 대해 “시간과 장소를 이동한다는 것 자체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가진 욕망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에서는 타임 슬립을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종국에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에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며 “타임 슬립은 현재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쓰여야 성공적인 장치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