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지휘자ㆍ중재자ㆍ재판관ㆍ지배자….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경기를 진두지휘하고 상황 발생 때마다 심판이 중재하거나 해결하기 때문이다.
심판의 능력에 따라서는 지루한 경기도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스포츠 경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역할과 권한을 지녔다.
그러나 심판은 외롭다. 누구도 심판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는 ‘명장면 베스트’ 또는 ‘오늘의 명장면’으로서 오래도록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심판들의 ‘베스트 판정’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사람은 없다. 심판의 매끄러운 경기운영과 정확한 판정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국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다.
반면 단 한 번의 오심으로 혹독한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선수와 코치진의 거친 항의는 기본, 관중들의 야유와 욕설마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경기 후에는 언론의 뭇매가 시작된다. 거기에 네티즌의 집요한 막말·욕설 댓글이 쏟아지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자칫 언론이나 스포츠팬들로부터 ‘최악의 오심’으로 낙인찍히면 평생 끊을 수 없는 꼬리표가 생긴다. 심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경기 중 입은 부상도 벙어리 냉가슴이다. 야구에서 타자가 친 공에 맞는 일은 부지기수, 투수의 150㎞ 강속구에 직접 맞는 아찔한 사고도 일어난다. 축구 심판은 전·후반 내내 쉼 없이 뛰어다녀야 하고, 복싱에서는 선수의 주먹에 맞아 실신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
아픈 내색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경기 지연은 물론 선수들의 플레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아픈 부위를 움켜쥐고 일어나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다시 그라운드에 나서도 박수는커녕 동정 눈빛도 없다. “빨리 빨리 시작해라”라는 비정한 외침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심판은 스포츠 경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선수·관중과의 피할 수 없는 대립으로 천대의 대상이다. 스포츠 평론가 신명철 씨는 “프로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서 심판과 선수·관중의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심판도 하나의 전문직업인이다. 경기가 과열되면 판정 하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심판과의 갈등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이해·양보 없이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프로 스포츠 출범과 함께 심판과 선수·관중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막말·욕설을 넘어 폭행 사건도 간간히 일어났다. 최근에는 인터넷 악성댓글이 심판들의 사기를 꺾어놓고 있다.
그러나 오심을 줄이려는 심판들의 노력은 처절하다. 종목별 이론학습은 기본, 체력단련에 해외전지훈련까지 떠난다. 경기가 끝나도 술자리는 가급적 피한다. 음주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명철 씨는 “프로야구 초창기의 심판들은 대부분 실업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 출신이었다. 경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선수나 감독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심판에 대한 편견이 낳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결국 심판의 처우 개선에 있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 심판에 대한 이해와 공경”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