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쯤 대장암 4기 선고를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던 중 8번째 재검사 때 간에 암세포가 전이된 걸 알았죠. 그래서 보험 적용되던 항암제에서 적용이 안되는 항암제로 바꿨습니다. 한달에 두번씩 항암제를 처방받는데 500만원이더군요. 그전엔 5만원이었는데…. 예전엔 남편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투정도 부렸는데 이제는 아프다는 말 하기도 눈치가 보이네요. 치료도 힘들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져 남편을 마주할 면목이 없습니다.” (대장암 환자 이모(43ㆍ여)씨)
“남편과 저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이 결혼해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아프면 결혼예물을 팔아서 병원비로 썼죠. 악착같이 남들보다 두 배 넘게 일해서 이제 조금 집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딱 그때입니다. 행복하려던 찰나 저는 유방암 판정을 받게 되고 우리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집안에 암환자가 있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참혹한 말이 제게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유방암 환자 정모(55ㆍ여)씨)
뇌종양이 발견된 아버지의 부탁으로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한 아들이 경찰에 붙잡힌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비극적인 사연 이면에는 암 환자를 보살펴야 하는 가족 보호자의 경제적인 부담이 있었다.
이같이 암 등 중증 질환을 치료하느라 가정이 파탄 날 정도의 ‘재난적 의료비’(가구의 가처분소득 중 의료비 지출이 40% 이상인 경우)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빈곤층을 뜻하는 ‘메디푸어’라는 신종어가 생길 정도다.
이러한 재난적 의료비 부담은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에게도 치명적이다. 국립암센터의 자료(2009년)에 따르면 암환자 1인당 경제적 비용부담은 평균 2970만원이었다. 가장 부담이 큰 병은 백혈병(6700만원)이며 뒤이어 간암(6620만원), 췌장암(6370만원) 순이었다.
하지만 암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더 커지는 이유는 치료비뿐 아니라 누군가 암 환자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비싼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가족 내 한사람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이들을 더 힘들게 했다.
국립암센터가 2011년 암환자 가족 보호자를 대상으로 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영향을 연구한 결과 신체적, 정신적 부담은 물론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루 6시간 이상 간병을 하고 소득이 적은 보호자일수록 건강문제나 재정문제가 매우 불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현재 급여 대상이 아닌 간병서비스를 비롯해 선택진료비(특정 의사를 선택해 진료받을 때 추가로 내는 비용), 상급병실료 즉 3대 비급여는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사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2 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 보고서를 보면 비급여 부담 총액은 2007년 13조4000억원에서 2011년 21조6000억원으로 8조2000억원이나 급증했다. 비급여 본인부담 21조6000억원 중 선택진료비(2조5000억원)와 상급병실료(1조8000억원), 간병비(1조7000억원) 등 3대 비급여 규모는 6조원으로 전체 비급여의 27.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개인당 비급여 본인부담률은 2006년 13.3%에서 2011년 17.3%까지 높아졌다.
이 때문에 4대 중증질환자를 비롯해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복지공약인‘4대 중증질환(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100% 국가 보장’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정 파탄의 주요 원인인 3대 비급여 대책은 연말로 미뤘다.
사실상 3대 비급여를 빼놓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암시민연대 최성철 사무국장은 “병원 이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비급여 항목을 병원은 계속해서 늘리려고 할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비급여가 없어지지 않는 한 환자 의료비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환자의 간병인 고용 부담에 대해선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사의 절대적인 수는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문제는 간호사의 처우가 매우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간병인 업무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개선이 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정형순 정책국장도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환자 본인부담금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비급여 항목이 사라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와 건강보험제도가 비슷한 일본을 예로 들었다. 정 국장은 “일본은 급여와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일본의 경우 차등병실료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종류도 비급여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