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체험기]삼성전자 광주 그린시티… 회사 스티커 붙이는데 땀나고 떨리고...

입력 2013-10-0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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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라인 작업 참여… 190명이 110분 동안 한 대 만들어

▲삼성전자 광주 그린시티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생활가전 제품을 생산한다. 현장에서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은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그린시티 냉장고 생산라인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제공 삼성전자
대한민국이 어수선하다. 정치권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서민들은 먹고 살고 힘들다며 한숨을 내쉰다. 기업인들 역시 속은 타들어간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국내 제조업의 생산현장에는 아쉬움과 한숨이 아닌 열정만이 존재한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기필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여름에는 더 뜨겁게, 겨울에는 더 매섭게 일에 매진하고 있는 국내 중추 산업의 치열한 현장. 이투데이 기자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렸다.

작업용 장갑을 낀 손 안에 땀이 흥건하다. 손은 바들바들 떨린다. ‘스티커 하나 붙이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온 몸의 기를 모아 두 손으로 ‘SAMSUNG’ 마크 스티커를 내 앞에 온 김치냉장고 전면 중앙에 조심스레 붙인다. 아뿔싸! 한 번에 ‘SAMSUNG’ 마크가 붙어야 하는데, 실수로 ‘SAM’까지만 붙어버렸다.

기자 옆 자리에서 일하던 삼성전자 직원인 김다예씨가 보다 못해 나섰다. 스티커를 떼어내는 끌을 이용해 잘못 붙인 ‘SAM’ 마크를 살짝 제거한다. 이어 “저도 처음에는 실수 많이 했어요”라며 웃는다. 웃는 모습에 왠지 더 미안하다.

◇김치냉장고 1대에 190명의 손길이… 한 명만 실수해도 ‘불량’= 지난달 25일 기자는 삼성전자 그린시티(광주사업장) 김치냉장고 생산라인에 1일 직원으로 참여했다. 직원이 아닌 기자가 현장에서 실제 작업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몸으로 느껴 본 현장은 겉으로만 돌아보던 때와 많이 달랐다. 냉장고 한 대가 만들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10분. 거쳐야 하는 직원 수는 약 190여명. 그중 단 한 명만 실수해도 제대로 된 제품은 나올 수 없다.

그만큼 기자의 책임도 막중해졌다. 슬슬 발을 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주변을 보니 정신이 확 든다. 한쪽에서는 망치로 ‘쿵쾅 쿵쾅’, 다른 쪽에서는 용접 작업이 한창이다. 주유기처럼 생긴 도구로 냉장고에 냉매를 집어넣는 직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기자가 투입된 현장은 디스플레이 공정. 김치냉장고 전면에 삼성 영문 로고와 에너지 효율을 표시한 스티커를 붙이고, 냉장고 작동 버튼이 있는 디스플레이 조작부를 결합하는 작업이다. 이 공정에서 근무 중인 김다예씨는 19살에 처음 입사해 3년차를 맞이한 22살의 여직원이다. 어린 나이와 달리 일하는 모습은 ‘생활의 달인’출연자 못지않다. 요령을 숙지한 후 작업을 시작했지만, 바로 이어진 SAMSUNG 로고 붙이기에 실패하며 망연자실. 이어 디스플레이 조작부 연결로 만회하려 하나 이 역시 쉽지는 않다.

“딱 소리가 날 때까지 끼워주신 후 위에서부터 이렇게 맞춰 넣으시면 돼요.” 힘있게 끼운 후 들리는 ‘딱’ 소리가 참 반갑다.

조금 생긴 자신감을 믿고 스티커 붙이기에 재도전했다. 에너지 효율 등급을 표시해 놓은 스티커다. 긴장한 나머지 약간 비뚤어진 느낌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해보니 참 어렵네요. 약간 비뚤어진 건 상관없지 않을까요?” 민망한 마음에 슬쩍 말을 던진다. 기자와 띠동갑인 여직원 답변이 걸작이다. “제가 소비자라도 제품을 샀는데 스티커가 조금 비뚤어져 있다면 기분 나쁠 거 같아요.” ‘이게 바로 프로구나.’

물론 어느 한 공정에서 실수했다고 해서 그대로 소비자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곳곳에 포진해 있는 중간 점검단계에서 바로잡는다.

▲삼성전자 그린시티 김치냉장고 생산라인에서 디스플레이 공정 작업을 하고 있는 이투데이 송영록 기자(뒤쪽)와 직원 김다예씨.
◇대학캠퍼스 같은 생산현장… 재치 넘치는 이벤트도 = 배가 고프다 했더니 어느덧 오후 12시가 넘었다. 김광덕 냉장고제조그룹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위해 구내 식당으로 이동했다. 한식, 중식, 양식 3종류의 메뉴가 있다. “다 맛있어 보인다”고 하자, 김 그룹장은 “윤부근 사장님도 어제 그러셨는데”라며 웃는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하기 하루 전인 24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를 책임지는 윤부근 대표이사 사장이 이곳을 찾았단다.

김 그룹장은 “윤 사장께서 오전에는 전략발표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라인을 무려 7시간 동안 꼼꼼히 살폈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에 임직원들과 막걸리도 한 잔하면서 생활가전 1등 결의를 다졌다”며 “그날 안가신다는 거 억지로 보내드렸다”고 활짝 웃었다.

이날은 심수옥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부사장도 그린시티를 방문했다. 심 부사장은 윤 사장과 함께 영국 해럿백화점에 삼성 가전 프리미엄관 입점을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그만큼 삼성 수뇌부에서 생활가전 1등의 산실인 광주 사업장을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럴수록 이곳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간다. 실제 사업장과 식당 분위기는 대학 캠퍼스처럼 밝은 기운이 넘쳤다. 김 그룹장이 지나가는 직원들에게 소소한 안부를 묻는다. 재치있는 농담도 오간다. 김광덕 그룹장의 냉장고 철학도 들을 수 있었다. “냉장고라는 게 말이죠. 일종의 의학제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냉장고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오래 살기 시작했거든요.”

점심식사 후 오후작업이 시작됐다. 주야간 2교대로 돌아가는 작업장에서 오전 조는 8시부터 5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김치냉장고 성수기를 앞둔 터라 저녁 7시까지 잔업을 더 한다. 다들 피곤할 만한데, 지친 구석은 전혀 없다.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 기자만 예외다.

생산라인 입구에는 각종 포스터가 붙어 있다. 불량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포스터 경진대회 참가작들이다. 김다예씨는 “저도 작품을 응모했는데, 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죠”라고 말했다.

작업장에서는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소소한 이벤트도 항상 벌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스크류를 7개 주으면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7개로 교환해주는 식이다. 기자도 눈에 불을 켜고 바닥을 살폈지만, 결국 이날 스크류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

기자가 작업에 참여한 냉장고는 또 다른 공정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완성된다. 마지막 단계인 포장작업 앞에는 ‘여기서부터는 고객님 마음입니다’란 푯말이 붙어있다.

냉장고 1등을 넘어서 생활가전 1등. 더 나아가 한국경제를 1등으로 이끄는 것은 어느 한 사람 몫이 아니다. 기자가 잠시 체험한 삼성전자 그린시티는 ‘사장부터 사원까지’ 똘똘 뭉쳐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 경제 희망의 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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