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와 같은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고자(告子)라는 인물이 있었다. 告子의 이름은 고불해(告不害), 쾌락주의자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고자는 ‘타고난 것을 본성(本性)이라고 한다’라고 주장하고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말하였다. 告子는 평소에 ‘음식을 좋아하고 色을 좋아하는 것이 성(性)이다’, 性은 善함도 없고 不善함도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사람은 마땅히 타고난 본성, 즉 욕망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告子는, 고여 있는 물은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듯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하나의 현상에 불과할 뿐 물 자체하고는 상관없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孟子가 통렬하게 반박했다. “물은 동서로 나누어짐이 없지만, 진실로 상하로 나누어짐조차 없다는 것인가. 人性이 善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으니 사람은 善으로 나아가지 아니함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다.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하면 이마보다 높이 올라가게 할 수 있으며 거꾸로 쳐서 흐르게 하면 산에 오르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上善若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의 본성을 통해 사람에게는 누구나 선한 데로 나아가려는 본성이 있다는 것, 물론 물이 역류(逆流)하여 흐를 수 있으나 이는 물의 본성이 아닌 것처럼 不善의 행위 또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라는 지적이었다.
시중에 자본이 쌓여 있다. 아니 고여 있다가 더 맞겠다. 금액이 수백조원 이상으로 엄청난 규모다. 저수지 서쪽이 터지면 서쪽으로, 동쪽이 터지면 동쪽으로 쏟아져 내릴 것이다. 자본의 쾌락주의, 자본은 이익이 되는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아직 이익 되는 곳을 찾지 못해 고여 있는 것이리라.
자본에는 利益만 있고 善惡은 없는 것일까. 있다면 자본의 善은 무엇일까. 國富를 키우는 자본을 착한 자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의 부유함, 國富란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가 말했다. “국민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데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말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