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이 추천한 제품은 성능면에서 우수한 것일까.
대한의사협회가 추천한 옥시 데톨 주방세제가 산성도 기준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닥터 마케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업체들은 의사들이 추천한 만큼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매출을 올렸다. 문제는 협회 추천이 의학적 분석이나 유사 제품과의 비교 검증은 커녕 업체가 제공한 서류 검토만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인증 대가를 제품가격에 전가해 소비자들의 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서울 시내 대형마트 3~4곳을 확인한 결과, 문제가 된 데톨 주방세제가 타사 제품에 비해 300원에서 많게는 900원 가량 더 비쌌다.
앞서 지난 6일 한국소비자원은 옥시레킷벤키저에서 수입·판매하고 있는 주방세제 ‘데톨 3 in 1 키친시스템’ 3개 제품의 산성도(pH)를 측정한 결과, 표준 사용량의 평균 pH가 4.0으로 보건복지부 고시 ‘위생용품의 규격 및 기준’ 1종 세제기준(6.0~10.5)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이 바로 먹는 채소나 과실을 씻을 때 사용하는 1종 세척제에 적합한 수준보다 산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이 제품에는 ‘손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표기가 있으나 손에 묻었을 때 충분히 씻어내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제품이 ‘대한의사협회 추천제품’이라는 로고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똥은 의협으로 튀었다. 의협은 지난 2004년 5월부터 옥시와 업무협약을 체결, 옥시 데톨 제품3종(비누, 스프레이, 3 in 1 키친시스템)에 ‘대한의사협회’ 명칭 및 로고를 사용토록 승인했다. 이 협약에 따라 옥시는 판매 순매출액의 5%를 후원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맺었다. 의사협회는 옥시 측으로부터 지난 9년 동안 모두 21억7000만원을 받았다.
의협에서 의약품이 아닌 일반제품을 인증한 사례는 현재까지 데톨이 유일해 제품에 대한 신뢰도와 인지도가 급상승하는데 기여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역시 현재 P&G의 오랄비 칫솔 제품만을 공식 추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대한치과의사협회 추천’이라고 검색하면 오랄비 칫솔 외에도 아모레퍼시픽의 메디안 칫솔도 ‘대한치과의사협회 추천’이라는 로고를 달고 팔리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은 전문가들이 해당 제품을 정밀 분석한 후 추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부 박모(33) 씨는 “아이들과 함께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의사 추천 제품을 쓴다. 아무래도 인증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낫지 않겠냐”면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인증 로고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의사협회 관계자 이에 대해 ‘인증’이 아닌 ‘추천’임을 강조했다. 인증은 시험기관에서 완벽하게 검증이 돼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협약서에는 ‘추천’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또 복지부의 감사를 받았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별도 회계와 통장으로 관리돼 ‘손씻기 사업’ 등 공익 사업에만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이 부적합 판명이 날 경우 추천을 취소한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추천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옥시 주방세제가 인체에 유해한 사실이 확인된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위험을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하므로 제품에 대한 의협 추천을 취소하고 내부 전문가 검토를 거쳐 옥시와의 업무협약 해지 등 국민안전을 위해 의협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 문제를 놓고 해당 협회에 대해 연말까지 감사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