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재미와 시사점이 동시에 있다. 그를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무거운 사회적 화두와 흥미 있는 전개가 공존했다. 봉준호 감독의 색깔은 영화 ‘괴물’(2006), ‘마더’(2009)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의 차기작 ‘설국열차’는 개봉 전부터 ‘봉준호식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설국열차’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빙하기 마지막 인류를 태우고 달리는 열차 속 사람들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는 420억 원이라는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 크리스 에반스·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주연으로 봉준호 감독의 전작과 비교됐다.
“2005년 프랑스 원작만화를 서점에서 접하고 서점을 나서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때는 찍고 싶은 충동만이 가득했다. 400억이란 돈이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괴물’ 때도 ‘한강에 백주 대낮에 괴물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빙하기에 기차가 달려야 돼’라는 생각만 했다. 이 영화는 경우에 따라 100억짜리 영화가 될 수도 있고, 1000억짜리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글로벌 대작을 찍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인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를 연상했다. 다양한 나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탑승해야 했고, 실감나는 기차 세트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완성도나 규모, 제작방식에 대해 후회는 없다. 할리우드 영화 기준으로 봤을 때 420억은 큰 규모의 제작비가 아니다. 실제로 크리스 에반스는 미국 토크쇼에 출연해 ‘독특하고 작은 소규모의 영화를 찍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전작 ‘어벤져스’는 2500억이 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를 가장 허리띠를 졸라맨 작품으로 기억한다. 제작비는 숫자에 불과했다.
“2500억원대의 작품을 찍은 감독도 ‘한 100억만 더 있었으면’이란 생각을 할 것이다. 절제도 절제지만 절제당한 것도 있다. 일기예보에도 객관적 온도가 있고 체감온도가 있듯이 ‘설국열차’는 체감적으로 가장 허리띠를 졸라맨 작품이었다. ‘플란더스의 개’는 9억 8천, ‘살인의 추억’은 30억, ‘괴물’은 11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지만 가장 절감한 영화는 ‘설국열차’와 ‘괴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기차 칸을 보여주고 싶었고, CG가 아닌 실제 폭발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 영화상 최대 제작비라는 수식어가 다른 시선을 던져줄 수 있었지만 우리는 합리적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마더’ 때가 더 풍족했다.”
한편 봉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는 새로운 빙하기, 인류 마지막 생존지역인 열차 안에서 억압에 시달리던 꼬리 칸 사람들의 멈출 수 없는 반란을 담은 영화다. 오는 8월 1일 전세계 최초로 국내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