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이 23일 내놓은 중장기 조세개편 방향의 핵심은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더 걷어 복지지출로 인한 중장기적인 세수 부족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ATM(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을 때 붙는 수수료에도 부가가치세를 매겨 그동안 면세혜택을 받아 왔던 금융·의료·교육 분야에서 부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또 근로자 소득공제를 축소하고 500만명에 달하는 소득세 면세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세수를 늘려 공약 이행과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직접 증세 대신 간접세인 부가가치세 과세를 늘리더라도 조세 저항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상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함에 따라 고스란히 서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득세 개편안 역시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유리지갑만 털리는 격이어서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질 것이란 우려다.
◇은행·증권사 수수료, 성형수술 등 부과세 면제 혜택 폐지될 듯= 조세재정연구원의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엔 정부가 1977년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이래 주어졌던 금융·보험 서비스 분야의 면세혜택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박근혜 정부가 이미 “증세는 없다”는 원칙을 천명한 만큼 복지지출을 감당하려면 직접 증세가 아닌 다른 대안을 강구한다는 점에서 부가가치세의 면세·감면 제도의 손질은 이미 예견됐다. 더욱이 부가가치세율은 1977년 도입 이후 35년간 10%를 유지하고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낮다.
현재 부가가치세 면세는 사실상 거의 모든 금융·보험 서비스가 대상이다. 이에 따라 은행시간 마감 후 자동화기기(ATM)로 현금을 찾거나 송금할 때, 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때, 펀드·보험 판매나 잔액증명서 같은 각종 증명서 발급받는 경우에 내는 수수료에도 부가세가 매겨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료보건 서비스에도 부가세 과세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쌍꺼풀·코성형·지방흡입·주름살제거술 등을 제외한 미용 성형수술, 침사(鍼士)와 안마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치과위생사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장의사의 장례서비스 등 부과세 면제 혜택을 받아온 분야에 중장기적으로 과세가 이뤄질 전망이다. 또 입시학원, 보습학원 등 사교육 시장과 자동차운전학원, 댄스 학원 등 성인 대상의 교육 분야도 부과세 과세 범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보통 생산·유통되는 물건이나 서비스에 포함된 것으로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내는 간접세인 만큼 물가상승을 촉진하고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으며 저소득자의 세부담이 가중되는 역진성 등의 문제가 부작용으로 지적된다.
◇소득공제, 세액공제로 전환…면세자 축소= 보고서는 소득·금융과세제도의 경우 비과세 소득을 과세로 전환하고, 소득공제 중 일부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과세 기반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OECD 국가는 총 조세수입의 23.9%를 소득세로 조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소득세 비중이 14.3%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우선 의료비, 교육비 등에 대한 근로자 소득공제는 세액공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득공제란 총급여에서 일부 금액을 필요경비로 인정해 빼주고 과세표준액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반면 세액공제란 과세소득 금액에 세율을 곱해 세액을 산출하고 일정액을 세금에서 빼주는 것을 말한다. 소득공제는 공제항목의 지출이 많을수록 세금이 줄어드는 데 비해 세액공제는 산출 세금에서 일정액을 감면해줘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게 된다.
근로자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 소득세 과세 기반은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조세연은 “한국의 소득세제는 공제·감면이 많아 2011년 근로소득 과세대상자 중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은 36.1%에 달한다”며 “소득세 공제·감면이 많아 과세자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고 과세기반이 약한 데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득공제 항목이 줄어들어 ‘유리지갑’인 셀러리맨의 세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