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 홍수 속에 주목받는 상임위가 바로 법제사법위원회다. 소관 상임위를 거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는 최종 관문 역할을 하는 법사위는 노른자 상임위에 해당한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에 대한 법체계 검토와 수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렇다 보니 법사위가 각 법안의 법체계 검토, 자구 수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남용한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자격 미달’ 법안이 올라오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갑을 관계법을 다루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거 몰려 있는 법사위에는 어느 때보다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투데이는 최근 법률안 ‘게이트 키핑’ 논란이 일고 있는 법사위에 대해 살펴본다.
◇ 전두환 추징법, 경제민주화,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등 현안 산적 =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법안은 현재 법사위를 중심으로 여러 건이 제출된 상태다. 새누리당은 소급적용이나 가족 재산 추징 등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조속한 추진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은 소액의 추징금을 납부하면서 추징시효를 연장하지 못하도록 추징 확정 3년이 경과되면 강제 처분토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특히 추징 대상자의 재산이 불법적으로 취득됐다는 점을 인지하고서도 가족 등이 이를 취득할 경우 해당 가족 등으로부터 추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연좌제, 과잉 처벌 등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난제다. 새누리당은 형법의 기본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 법이 소급 적용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에 대한 문제 등 많은 법리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가맹사업 거래 공정화법(프랜차이즈법)’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법’ ‘금융정보분석원(FIU)법’ 등 경제민주화 3법 처리도 쟁점이다. 이들 법안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를 통과했지만 양당 모두 내용을 손질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은 금융거래정보 공유로 인한 국세청의 권한 남용을 막을 안전판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가맹본부가 가맹점 모집 시 예상 수익을 과도하게 제시하면 형사처벌토록 한 프랜차이즈법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도 법사위의 쟁점이다. ‘국가정보원 대선·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를 계기로 국회 국정조사 실시를 둘러싼 여야 논란이 가열되면서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가 끝난 만큼 즉각적 국정조사 착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아직 관련 수사가 완료되지 않았다며 국정조사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다.
지난 17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를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법사위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이 근거 없는 매관매직설을 꺼내 드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전형적 물타기 시도”라며 “새누리당은 지금이라도 국정조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민주당의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한 뒤 “민주당의 비협조로 국정원 여직원 감금 및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수사는 아직 완결되지 못한 것도 문제”라고 맞섰다.
◇ 법사위 월권논란 = 법사위는 최근 타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자구수정’만 할 수 있는 기본 권한을 넘어 법안을 수정하거나 제동을 걸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등 주목도가 높은 법안이 법사위만 가면 제동이 걸려 타 상임위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4월 임시국회 때 FIU법·프랜차이즈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정무위 법안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등 환경노동위 법안이 법사위에서 처리 지연되거나, 수정 처리된 상태다. 이런 탓에 “법사위가 상원이냐, 갑 중 슈퍼갑” 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별도의 특별위원회나 법률검토기구를 만들어 의원입법을 대상으로 철저한 자체 검증이 이뤄지는 효과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이목희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폐지하는 등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여당도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법사위원장이 소속돼 있는 민주당에서 법사위를 겨냥한 법안이 제출돼 눈길을 끌었다.
개정안은 법안은 법사위의 명칭을 사법위원회로 바꾸고,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폐지토록 했다. 또 법률안의 체계·자구심사는 소관 상임위에서 맡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