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호PD, 한류와 ‘가을동화’, ‘겨울연가’, 스타를 말하다![배국남의 직격 인터뷰]
한 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23일 서울대 아시아 연구소 영원홀에서 ‘대중문화 교류를 통한 연대를 찾아서’주제로 열린 강좌가 열렸다. 이 자리에 ‘가을동화’로 중화권에서,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한류를 일으킨 윤석호PD가 패널로 참석했다.
윤PD는 같은 패널로 참석한 김수정 충남대 교수의 팬이라는 말에 그리고 강좌에 참석한 학생과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찬사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연출할 때는 무섭다”고 말하지만 늘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윤석호PD는 기자와 함께 참석한 3시간에 걸친 열린 강좌에서 그리고 강좌 진행자 강명구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그리고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출한 드라마와 한류에 대한 생각을 속속들이 들려줬다. 수많은 한일 양국 전문가들은 윤석호PD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류는 없었을 것이고 수많은 외교관이 못하는 일을 혼자서 해냈다고 말한다. 5000년 역사에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인 한류 그것도 일본에서의 한류를 일으킨 주역인 윤석호PD가 말하는 ‘겨울연가’, ‘한류’ 그리고 한국 드라마와 스타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방송10년을 맞았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한류 10년을 의미한다. 감회는 어떤가?
=인기가 일시적으로 끝날 줄 알았다. 10년 전 처음 ‘겨울연가’가 인기를 얻었을 당시는 이렇게 꾸준한 사랑받을지는 몰랐다. 지금은 ‘겨울연가’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K-POP, 음식, 패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류의 영향이 확대되고 정착해 나가게 돼 매우 기쁘다. 한류가 이제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겨울연가’는 단순히 하나의 드라마가 아닌 한국대중문화사와 한류사에 하나의 사건이다. 연출자로서‘겨울연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 어느 정치인이 그런 말을 했다. “양국의 정치인이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하나의 드라마가 해냈다”고.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겨울연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문화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증명해 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중요성과 한국문화의 자긍심을 보여준 것과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일부에 존재하는 문화적 열등감을 극복할수 있는 계기가 돼 너무 기쁘다.
-‘겨울연가’의 일본의 성공은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 일본 NHK에서 구매 제의를 했을 때 창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위성방송과 지상파 방송을 거치면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 소재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서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에 좋아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 50,60대 아줌마들이 좋아해주셨는데, “일본의 아줌마들에게 소녀를 찾아주었다.” 라는 표현처럼 첫사랑과 같은 ‘설렘’의 기쁨을 찾아주었다고 생각한다.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던 중년 여성에게 드라마를 통해 자신이 여자고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겨울연가’의 일본에서의 성공은 ‘일본 대중문화를 표절하는 한국’이라는 인식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일본’생각을 바꿔 놓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문화에는 우위 개념보다는 소통으로 얘기하는 게 좋은 듯 싶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처럼, 일본 드라마와 다른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빠지는 일본인들도 많아지게 된 것이다. ‘겨울연가’와 ‘한류’를 통해 그동안 소통이 적었던 한국 문화를 접하게 되고, 그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계속해서 소통을 이어가고 확대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웃나라지만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른 것에 대해 놀랐다.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과 한국 역사에 그리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져 보람을 느낀다. 한 재일동포 할아버지가 내손을 잡고 “80년을 살아왔는데 내 살아생전에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 너무 고맙다”라고 하는 말은 많은 것을 드러내준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의 한류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대한 입장은
=나 역시 ‘겨울연가’가 한류의 진원지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건 ‘타이밍’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결과에는 그 과정이 있듯이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성공한 데에는 여러 가지 도움이 됐던 요소들이 있다. 한국의 근대, 현대 문화를 잘 이끌어온 선배들의 누적된 문화 역량을 그 하나로 들 수 있고, 시대적으로는 한일월드컵으로 서로에게 좋은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상황에서 그런 좋은 타이밍에 ‘겨울연가’가 그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겨울연가’는 윤석호PD에게 어떤 의미인가, ‘겨울연가’ 초래한 개인적인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PD 한 길만 걸어왔던 사람으로서 내 직업에 대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변화로는 ‘겨울연가’로 인해 유명해졌고 그로 인해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더욱 커졌다.
-김희선 명세빈 최지우 유시원 원빈 이병헌 고소영 송혜교 문근영 송승헌 등을 스타로 만드는 등 진정한 스타 메이커라고 할 정도로 신인을 스타로 만드는 미다스 연출자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작업한 연기자중 인상적인 연기자를 꼽는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여러 연기자들이 있지만 한 사람만 선택해야 한다면, 원빈이다. 신인을 캐스팅 할 때는 나 역시 점쟁이처럼 직관에 많이 의존한다. 직관은 연기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힘이 있다. 처음 원빈을 봤을 땐 말수도 적었고 끼가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자꾸 시선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고, 그 뭔가를 찾고 싶어서 당시 미니시리즈 ‘프로포즈’에 조그만 역할로 시작을 했다. 3년 뒤에 ‘가을동화’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가 가졌던 직관을 놀라운 발전으로 증명해주어서 매우 기뻤던 배우였기 때문에 기억이 남는다. 수많은 스타중 원빈을 꼽은 이유는 성취감도 있다. 처음 봤을 때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이었는데 작품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스타로 성장했다.
-‘겨울연가’로 촉발된 일본에서의 한류는 이제 드라마 중심에서 K-POP중심으로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데 윤석호PD가 생각하는 한국 드라마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한국 드라마는 갈등구조나 사건 등 드라마의 흥미로운 장치가 매우 발달했다. 지금은 그 수준도 매우 높아져서 일단 드라마를 흡인력있고 재밌게 만드는 게 한국드라마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약점을 들자면, 지나치게 재미나 흥미, 템포만 강조하다 보니 시청률은 높지만 단순히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임팩트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자극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강렬하진 않더라도 가슴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그런 드라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 중 가장 아끼거나 애착이 가는 드라마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이유는?
=모든 드라마가 다 애착이 가지만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한류의 시작점이라고들 하는 ‘가을동화’를 꼽겠다. 2000년 들어 새로운 시대의 화두에서 항상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펼친 드라마가 바로 ‘가을동화’였다. 평소, 자연과 동화의 순수성, 판타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담아 동화 같은 스토리, 동화 같은 장소, 동화 같은 배우들을 꾸려 내가 좋아서 만든 작품인데 타인들도 많이 교감해 주었다는 것이 매우 기쁘고 힘이 되었다. 그 때의 일들이 드라마관의 적립에 바탕이 되었다.
-윤석호PD의 드라마관과 연출관은 무엇인가
=드라마관은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드라마이다. 연출관은 내재율과 외재율의 충돌과 밸런스,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충돌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밸런스와 균형감을 찾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내용과 형식의 균형 역시 항상 고려한다.
-드라마를 연출할 때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무엇인가
=하나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내가 느껴야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를 중시한다.
-앞으로 연출할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계획은?
=그동안 드라마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세상의 트렌드는 계속 변화하고 있고 나의 가치관도 트렌드와 점점 간극을 보이고 있는 거 같다. 지금은 그 간극을 채워줄 뭔가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고 그래서 그것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