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이번 방미의 의미는 특별하다.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한·미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양국이 동맹을 맺은 지 60주년 되는 해다. 양국 동맹이 인생으로 치면 환갑(還甲)을 맞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다. 이번 방미의 코드명이 ‘새 시대’(New Era)인 것도 그 때문이다.
한·미 양국 정상은 동맹 60주년 기념선언도 채택했다.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선언문에 포함됐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대거 경제사절단에 참여한 것도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을 수행하는 경제사절단에 포함되는 기업인은 영광이면서 새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시절도 있었다. 이래서 경제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에 로비를 하기도 했다. 권력자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정치적·경제적 야심이 있는 기업인들이 경제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해 애를 썼다. 기업 브랜드 가치보다 국가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았던 때여서 국가의 보증을 받는 괜찮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부가적 혜택이었다.
물론 과거의 얘기다. 지금은 어떨까?
주요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는 “평소 그룹 오너들은 외국 방문 시 1등석을 타는 데다 별도의 의전을 받고 일정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지만,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할 경우‘여러 수행원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말로 불편함을 꼽는다. 또 사업의 기회보다는 의무만 주어진다고도 했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뜻이다.
과거에 비해 불편함은 많이 덜어졌다. 예전에는 대통령의 외국 방문 때에는 항공사 오너는 물론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재계 총수들이 모두 전용기를 탔다. 항공사 오너를 전용기에 타도록 한 것은 안전운항을 보장받기 위한 볼모의 성격이 있었다. 또 재계 총수들이 전용기에 같이 탔던 것은 기업의 위상이 요즘 같지 않았던 데다 여러 나라를 순방하는 일정일 경우 적기에 이동하는 항공편을 찾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항공사 오너가 굳이 타지 않아도 되고 주요 그룹 오너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는 주요 그룹 총수들의 속내는 그리 편해 보이지 않는다. 취임 후 첫 번째 대기업 오너들과의 상견례를 이번 방미 기간으로 정한 것이 주요 그룹 오너들이 경제사절단에 대거 참여한 실제 이유다.
박 대통령은 수행 경제인들과의 조찬 모임에서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길에 노력해 주고 투자 확대도 차질 없이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면서 “정부도 고용이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확실하게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투자와 고용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뒤로 감춘 손에는 경제민주화라는 채찍이 들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공은 재계로 넘어왔다. 이건희 회장은 이 자리에서 “삼성은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투자와 일자리를 최대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정몽구 회장과 구본무 회장도 정부 정책에 협조할 것임을 다짐했다. 귀국하는 대로 그룹별로 투자와 고용을 얼마나 더 늘릴 것인지를 앞다퉈 발표할 게 뻔하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재계가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모양새가 이상하다. 재계 총수들을 압박해 미국으로 데려간 것도 그렇고, 반강제하는 방식도 그렇다. 새 시대,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방식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