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에 은닉된 자금은 어느 정도일까.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조세피난처에 숨은 슈퍼부자의 금융자산 규모는 최소 21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GDP 총액을 합한 것과 비슷한 규모다.
맥킨지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제임스 헨리는 조세피난처에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부자들을 대략 935만명으로 추정한다.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중 9만1000여명이 1인당 1조8000억달러, 전체 규모로는 9조8000억달러를 숨기고 있다. 전 세계 60억 인구의 0.001%가 글로벌 금융자산의 30%, 해외 은닉자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헨리는 “21조달러의 연 수익률을 3%로 가정하고, 30%의 소득세를 부과하면 대략 2000억 달러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조세정의네트워크는 조세피난처에 숨은 우리나라 슈퍼부자의 금융자산을 대략 7790억달러로 집계했다. 2011년 기준 한국 GDP(1조1000억 달러)의 70%에 달하며, 대외부채 총액(3984억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헨리의 공식에 7790억달러를 대입하면 대략 70억달러의 소득세 수입을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70억달러는 2010년 기준 소득세 37조5000억원의 20%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내 통계로도 조세피난처에 숨은 자금 규모는 증가세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비금융 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있는 역외금융회사에 송금한 돈만 16억2000만달러(약 1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는 기업들이 한국은행에 신고하고 합법적으로 보낸 내역만 집계한 액수로, 같은 기간 국외 금융투자잔액 40억달러와 비교하면 전체의 40%가 넘는다.
한은은 음성적으로 흘러간 자금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조세피난처로 숨어든 자금이 늘고 있다는 점은 여러 통계에서 감지된다.
조세당국과 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조세피난처(관세청 기준 62곳)에 대한 수출입 외환거래액은 3468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총 외환거래액(1조1173억달러)의 3분에 1에 해당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조세피난처와의 수출입 실물거래액 증가폭은 완만한 데 비해 외환거래액은 급증하고 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세피난처와의 수출입실물거래가 1053억달러에서 1591억달러로 51.1% 증가하는 동안 외환거래액은 821억달러에서 3468억달러로 322.4%나 늘어난 것. 국내에서 번 소득을 조세피난처로 빼돌리는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수치다.
지난해 전체 외국인직접투자(FDI) 390억800만달러 중 조세피난처로 흘러간 돈은 126억9500만달러로 전체의 32.5% 수준이었다. 역시 전년 20.1%(91억6400만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수준이다.
조세피난처를 거점으로 삼아 본국과 제3국 사이의 우회거래를 중개해 소득을 탈루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이 큰 ‘제3국 진출’ 목적의 투자액 비중 역시 치솟고 있다. 조세피난처 FDI 중 3국 진출 비중은 2008년 15.6%(21억5300만달러)였으나 지난해 6월 말에는 32%(40억6200만달러)까지 급증했다.
‘페이퍼컴퍼니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네덜란드에 대한 FDI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네덜란드 FDI는 28억4600만달러로 전년보다 9.2배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