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생인 김 전무는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신증권(옛 동원증권)에 경력직으로 입사해 투자분석부 스트레티지스트와 주식운용부에서 고유주식운용을 담당한다. 당시 한신증권 주식운용부는 박현주(미래에셋 회장), 구재상(전 미래에셋 부회장), 선경래(GNG인베스트회장, 슈퍼메기), 이원섭(한화투자증권 부사장) 등 현재 여의도 큰손들이 모인 사관학교였다.
1991년 산업은행 계열사 한국산업증권이 설립되자마자 조인해 조사부, 기업분석부, 주식부 등을 거친 후 1997년 제일투신(현 하이운용) 주식운용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펀드매니저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1999년 바이코리아펀드 열풍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도 선진 금융컨설팅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자문사를 창업했다.
“출발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버블이 꺼지면서 창업 3년 만에 회사 문을 닫았죠. 당초 원하던 성과를 얻어내진 못했지만 훗날 성장하는 데 있어서 큰 자산이었습니다.”
2002년 농협과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의 합작사인 농협CA(NH-CA)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컴백하면서 선진국인 프랑스의 운용, 상품 노하우를 습득했다. 주식운용본부장으로 3년을 지낸 다음 상품, 마케팅, 세일즈 등을 총괄하는 마케팅총괄책임자(CMO)를 담당한다. 매니저에서 상품전문가로 변신한 것이다.
2007년 영국계 운용사인 PCA자산운용(현 이스트스프링)에서 총괄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국내외 주식, 채권, 대안투자 등 모든 자산군을 다루며 실무적 경험을 크게 쌓았다. 우리투자증권에는 2010년 상품전략본부장으로 부임했으며, 에쿼티사업부 대표를 거쳐 올 초 글로벌사업본부 전무를 맡게 된 것.
다양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니즈가 높아가는 시점에 그의 다양한 경력은 업무 시 큰 시너지로 발휘되고 있다.
김 전무의 좌우명은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창의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에 늘 소통하며 다른 것에 대한 인정은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취미는 축구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대학 축구팀을 직접 만들어 뛸 정도로 열의를 보인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축구감독으로 살고 싶단다. 글로벌 필드를 향해 열심히 뛰는 김 전무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