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강 감독은 “정말 화가 납니다. ‘전설의 주먹’이 왜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까? 감정의 울림이 너무 크다는 게 18세 관람가 판정의 이유에요. 설정 자체가 세답니다. 고등학생들이 조폭들과 싸우는 장면을 보면 아이들이 따라한다는 거예요”라며 열변을 토한다. 사실상 ‘전설의 주먹’의 관람등급 결과를 두고 시사회를 통해 미리 영화를 본 기자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라는 반문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베테랑 강 감독조차도 심의를 의식해 폭력적인 장면을 자제한 탓이다.
영화는 고등학생 시절 각 학교 싸움짱이었던 전설들이 40대가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TV 파이터쇼 ‘전설의 주먹’을 통해서 재회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을 통해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한다. 또 어느새 소통이 부재한 아버지와 딸 사이의 사랑을 피력하고 있다. “40대 남성 관객에게 적중할 것”이라는 예견을 한 강 감독은 “아버지가 보고 아들이나 딸에게 추천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소년 자녀들은 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정말 화나면 영화 개봉 해 놓고 다시 한 번 심의 신청하려고 합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만큼 그의 목소리를 결연했다. 그만큼 ‘전설의 주먹’에 대한 강 감독의 애정은 남다르다.
“내가 영화를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2년을 보냈어요. ‘이끼’와 ‘글러브’ 이후에 ‘나에게 영화를 그만두라는 사인이 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습니다. 내 영화가 재미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데 대안이 없었어요. 2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들 만나서 술이나 먹고, 운동하면서 지냈지요. 그러던 중 ‘내가 임권택 감독처럼 예술 영화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해서 그러나? 김기덕 감독처럼 상에 대한 욕구가 해소 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이끼’나 ‘글러브’는 잘못 간 길이 아니라 한 번 가보고 돌아오면 되는 길이었는데, 그게 끝인 냥 거기서 해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때 만난 게 ‘전설의 주먹’입니다.”
슬럼프의 끝에서 만난 작품인 만큼 ‘전설의 주먹’에 대한 강 감독의 열정과 애정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부성애 코드를 기본으로 학교 폭력문제, 사회 지도층의 폭력적 행태, 스포츠 불법 도박의 현실 등 담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거기에 덕규(황정민), 상훈(유준상), 재석(윤제문)이 전설이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어느 하나 놓고 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결과 러닝타임은 2시간을 훌쩍 넘긴 153분이 됐다.
“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뺄 부분이 있으면 콕 집어서 얘기 해달라고 하는데 또 다 재미있대요. 기자들을 포함한 전문가들이야 영화를 분석하기 때문에 러닝타임이 티처럼 느껴지겠지만 관객들은 이야기가 재밌으면 끝날까봐 조마조마하거든요.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물론 물의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작품이기는 해요. 하지만 예민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한테 함부로 대하는 것, 괴롭히는 것, 기분 나쁘게 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하고 싶었어요. 서로 좀 보듬어주고, 나눠 먹는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전설의 주먹’을 통해 강 감독은 ‘예전의 얼굴로 돌아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 말은 즉 그가 신명나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 작품은 진짜 나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전설의 주먹’ 하면서 코믹 코드 촬영 때 재미있었거든요. 무조건 아무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믹 영화를 찍을 생각이에요. 비장미 하나 없이 방방 뜨는 영화를 신이 나서 찍을 거예요. 지금 코미디 시나리오를 속속 받아보고 있습니다.”
사진 양지웅 기자 yangd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