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눈빛과 표정, 홀의 공기, 극장의 역사, 무대의 추억….
“좋아하는 공연장이 어딘가요?”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무대 위의 주인공들이 꼽은 좋은 공연장의 조건이다. 사소한 것일지도 모를 것들이 배우나 가수에겐 중요한 부분이 된다니 실로 놀랍다. ‘객석에서 무대를’이 아닌 ‘무대에서 객석을’ 보는 그들에게 공연장이란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극이 행복하게 흘러갈 때 행복한 기운으로 공기가 가득 찬 것을 느낄 수 있고요. 슬픈 장면일 때는 마찬가지로 슬픔의 기운을 교감할 수 있죠.”
뮤지컬 배우 이건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이란다. 서울 강남 LG 아트센터의 무대를 가리켜 한 말이다. 이어 “무대에 정면으로 섰을 때 모든 관객이 한눈에 들어와요. 관객의 기운이 느껴지죠. 큰 공연장은 그러한 기운이 분산돼요. 관객과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공유할 수 있는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 좋아요.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 입꼬리의 변화로도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무대가 커지면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을 것이란 노파심에 연기의 섬세함이 떨어진다고 봐요. 그래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규모가 큰 공연장을 배우들이 좋아할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는 말이다. 공연의 주인공들은 무대가 크다고 무조건 좋아하진 않는다.
성악가 김동규 교수가 지목한 곳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대극장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다. 관객들과 소통과 교감을 하기에도 좋고 안락한 기분이 드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워낙 중시해 공연에서 토크 콘서트의 개념을 도입한 ‘소통 성악가’다.
연극계 원로 백성희씨는 두 곳을 지목했다. 첫 번째는 서울 용산 백성희·장민호극장을 꼽았다. 국립극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새롭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에 백성희와 故 장민호의 이름을 넣은 기념극장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극장에 애착이 가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한 곳 더 부탁했다.
두 번째는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이었다. 명동예술극장은 국립극단이 명동국립극장에서 공연하던 시절 백씨의 젊음과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연기할 때 포근하게 감싸지는 느낌, 발성 등에서 무척 편안하다는 것이 백 선생의 생각이다.
함춘호 기타리스트는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 개인적으로 좋습니다. 소리 전달력이 좋고 왜곡을 거의 느낄 수가 없어요. 악기 본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죠. 개인적으로 200~300명의 홀이 가장 좋아요”라고 답했다. 기타리스트답게 소리에 연관된 답변이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TED 강연 쇼에 참가 중이던 박지혜 바이올리니스트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의 장점으로 아늑함을 꼽았다. 그녀는 이메일을 통해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연주하면서 아늑한 집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편안하고도 따스한 느낌을 주거든요. 물론 소리로만 따졌을 때도 좋아요. 소리로만 보면 좋은 곳이 참 많지만 이렇게 친근감 있으면서 환상에 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홀은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홀에서 많은 청중과 음악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웅장한 홀을 선호하는 배우들도 있다. 가수 조성모는 “좋아하는 공연장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이다. 극장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역사, 크기, 음향 등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신뢰감을 준다”고 답했다.
소프라노 이수연씨는 서울 서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꼽았다. 그 이유로 “홀의 울림과 관객과의 호응도가 가장 조화로운 홀”이라고 설명했다. 강혜정 소프라노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가장 맘에 든다. 대극장 규모지만 객석 조명이 비교적 밝아 관객들의 표정을 잘 볼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