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군심(軍心)의 아이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내정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남 후보자는 36년간 군에 몸담았던 인물로 안보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에 대해 사람들은 좋게는 ‘전형적 군인’, 좀 나쁘게는 ‘딸깍발이’라고 평가한다. 육사 25기 출신인 그는 생도 시절부터 까다로울 정도로 청렴하고 원칙을 지나치게 따진다고 해서 ‘선비’, ‘생도 3학년’, ‘천연기념물’ 같은 별명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가 박근혜 정부 첫 국정원장으로 내정돼 주목을 끈다. 특히 군 출신이 국정원장에 임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이후 처음이다. 국정원의 안보적 역할을 강화해 본연의 역할을 되찾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원칙과 소신’의 전형적 군인 = 남 후보자는 1969년 임관 이후 초기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나회(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육사 출신 사조직)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 멤버가 아니었던 그는 변방에 머물렀다.
특히 그는 1979년 하나회 주동으로 일어난 12·12 사태로 동기였던 김오랑 소령을 잃고 그의 묘소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전두환 군사정권을 향해 “군인은 자기 군복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소신 발언을 해 진급 누락을 겪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들어 하나회가 척결되고 난 뒤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기용되는 등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남 후보자의 ‘소신’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충돌 때 절정에 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임했던 그는 군 사법개혁에 강력히 반대해 청와대, 국방부와 정면충돌했다.
또 같은 해 참모총장 재임 중 장성 진급 비리 의혹에 휘말리자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 돌연 사표를 제출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예비역 장성 시절인 2006년에는 노 전 대통령의 군 복무기간 단축 검토 등에 반발해 다른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타고난 군인’이라는 빛과 ‘비사교적·비타협적’이라는 그림자를 함께 가지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남 후보자의 청렴함과 소신은 군내에서 신망이 높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원칙을 따져 융통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원칙은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지 못한다. 융통성이 없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는 그는 참모총장 재직 시에도 골프를 치지 않았고, 현역 시절 부하들과 회식을 하면 ‘애국가’제창으로 끝마무리를 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 ‘안보 인선’의 결정판…육사 출신 안보 라인 주도 = 남 내정자가 박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때였다. 그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안보자문역을 맡으며 박 후보를 도왔다.
지난해 대선기간에도 박근혜 캠프에서 국방안보분야 특보로 활동했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나 국정원장 등 요직에 기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찌감치 나왔다.
특히 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등 중대한 안보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남 내정자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상의했을 정도로 신뢰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 내정자는 박근혜 정부 안보 인선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은 외교·안보라인 수장 격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에 이어 국정원장에도 군 출신을 내정했다. 이는 북핵 위협이라는 안보 현실에서 군 출신 전문가를 앉혀 국정원의 안보역량을 배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장에 육군 장성 출신이 임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임동원 원장(육군 소장 출신) 이후 처음이다. 12년 만에 ‘문민 국정원장’ 임명 관행이 깨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활용했던 ‘견제와 균형’이란 인사 코드가 엿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원이 본연의 역할에 주력하도록 쇄신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안보 측면에서 뒷받침할 적임자로 남 내정자가 선택됐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국정원 안팎에서는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치밀한 스타일의 남 내정자가 국정원이 제 모습을 찾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다만 군 출신이란 특성상 향후 대북정책이 강경론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