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에서 5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하는 구지민(56)씨는 지난 2006년 시중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6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큰 딸아이 결혼자금과 막내아들 대학 학자금 등에 사용하기 위해서 였다. 구씨는 경기가 나아지면 치킨 집 운영만으로도 이 정도 대출은 쉽게 상환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앞서 편의점 운영 실패로 은행에 1억2000만원의 빚이 있던 구씨에게 행복은 잠시였다.
경기불황으로 소득은 갈수록 줄어 들었고 대출금 상환에 이자부담 증가로 빚내서 빚 갚은 악순환이 반복 됐다. 최근에는 연체를 감당하지 못해 현금서비스에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았다. 마지막 보루인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이 방법 밖에 없었다. 구씨의 경우 지금까지 대출을 받은 횟수만 시중은행 2번, 저축은행 2번이다.
문제는 금융당국 역시 빚을 내 빚을 갚도록 유도하는 응급처방 이외에 뽀족한 대책이 없어 경기회복으로 가계소득이 증가하지 않을 경우 경제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1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4개월 동안 은행권에서 신규로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27.4%가 기존의 대출금을 상환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규모로는 43조6000억원 가운데 11조9000억원이 기차입금 상환자금에 쓰여졌다. 생계자금, 주택 임차비 등 가계운영자금(6조5000억원) 에 비해 2배 가까운 수치를 보였다.
반면 대출자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실제 주택 구입에 쓰는 비중은 41.0%에 그쳤다. 여기기 다른 용도로 쓴 금액이 1조원 미만이어서 통계에 잡지 않은 학자금, 전세자금 반환금 등을 포함하면 이 금액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금부터 상환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린 대출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서는 통상 대출금이 4개월 동안 연체되면 바로 임의경매에 들어간다. 집 한채가 전부인 서민들에겐 빚을 내서라도 집은 지킨다는 심정이 절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금감원이 지난 9월 하우스푸어 대책 중 하나로 경매유예제도를 실시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10월 이 제도를 은행권에서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려 집중 강조해 왔지만 올라온 매물은 3건에 불과했다. 이중 실제로 성사된 건수는 1건에 그쳤다.
여기에 장기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인 적격대출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의 고리와 무관치 않다. 지난 3월 이후 11월 21일까지 11조4000억원이 공급됐다. 연말까지 약 15조원의 공급이 예상되지만 적격대출을 받은 사람 10명중 6명은 기존 주택담보대출에서 갈아탄 경우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부작용 우려가 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존의 가계부채 대책들이 결국 빚을 내서 빚을 갚도록 유도하는 셈이라 상환부담을 미래로 넘기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로선 묘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