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 매일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딸 아이가 뜬금없이 CD를 사겠다고 한다. 하긴 요즘 아이돌그룹에 푹 빠져 휴대전화 이어폰을 놓지 않아 잔소리 듣는 시간이 늘어난 걸 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CD를 산다는 말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필자가 중고교 학창시절을 보냈던 80년대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녹음도 하고, ‘별이 빛나는 밤에’, ‘이종환의 디스크쇼’를 숨죽여 들으며 웃고 울던 시절이었다. 불법 복제 테이프가 날개 돋힌 듯 팔려 ‘길보드 차트’라는 유행어도 있었고, 히트곡은 길거리 리어커에서 탄생했던 때였다.
이후 90년대는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와 승민이 함께 CD로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 보듯 테이프는 구시대 산물로 뒷방 신세가 됐고 CD가 뒤를 이어받았다. CD가 세상을 휘어잡을 것 같았지만 연이어 2000년대 들면서 드디어 MP3로 음원을 다운받아 듣는 시대로 바뀌었다.
컴퓨터만 열면 편하고 싸고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최근 음원시장은 가요의 대중화와 음악을 산업화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반면 음악에 대한 애착이나 소중함은 퇴색해 가고 있다. 테이프에 좋아하는 노래를 보물처럼 녹음하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수줍게 선물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언제든지 싫증나면 키보드 하나로 음원파일을 삭제할 수 있어 음악이 일회용품처럼 된 것이 아닌가 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가수 이지현의 팬이었다.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수백번 들어 테이프가 늘어져 못쓰게 됐던 기억과 새 앨범이 나와 종로에 있는 서점에서 사들고 가슴 콩닥콩닥해가며 품에 안고 버스를 탔던 추억은 지금도 아련하다.
딸 아이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다
“CD는 왜 사게? 다운받아서 듣는 게 더 편할 텐데?”, “책상에 놓고 들을래요. 멋있잖아요.”
아내의 눈총을 뒤로하고 딸과 함께 멀리 큰 서점까지 갔다. 이리저리 음반 사이를 돌아다니는 딸이 30년 전 버스 안의 내 모습과 같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고, 빛바랜 사진 속의 내 젊은날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래 소중히 간직해라. 그 CD도 네 인생에 하나의 스토리로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딸 아이에게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