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폭설과 한파가 불어 닥친 지난 6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는 마치 대학 입시를 방불케 하는 추첨전쟁이 펼쳐졌다.
이날 만 3세(5세)반 23명 정원의 유치원생을 모집하는데 300명이 몰린 것. 학부모가 번호 순서대로 나와 미리 정해진 당첨 번호가 적힌 돌을 뽑으면 합격인데 번호표가 들어있는 박스를 흔들지 않고 추첨했다고 거센 항의가 이어지는 상황도 연출됐다.
회사를 조퇴하고 아이와 추첨에 참석해 당첨된 김상경(34)씨는 “이 추운 날 어린 둘째 데리고 시댁 식구들 까지 동원해 추첨하러 다녔다”면서 “동네랑 한참 떨어져 있고 직장맘 시간 맞춰주는 곳도 아니지만 추첨 떨어지면 유치원을 못 보내니 그래도 당첨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5군데 접수했다가 다 떨어졌다는 한 학부모는 “유치원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당첨을 하니 한 곳에 떨어지면 대체 어딜 가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면서 “첫째 때는 선착순이라서 아침 일찍 가서 1시간 기다리고 접수해서 보냈는데 유치원도 복불복이라니 답답해서 눈물이 났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유치원 선발 방식을 개선하겠다며 선착순 대신 추첨제를 의무화했지만 학부모들의 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조되고 있다.
만 3~5세 누리과정 시행으로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려는 부모가 늘고 있지만 유치원 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년 유치원에 들어갈 만 3~5세 아동의 수는 140만여 명에 이르지만, 유치원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61만여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아동 3명 가운데 1명 정도만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유치원 증설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에 모든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충당하라며 시·도교육청에 전가했고 시·도교육청이 예산 부족으로 공립유치원 증설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
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중앙정부가 만 3~5세 누리과정 예산을 지자체에 떠넘겼다”며 2013년도 서울시교육청 예산안 의결을 대선 뒤로 미뤘다.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는 아예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여기에 일부지역 유치원들이 학부모들의 복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추첨일과 추첨시간을 맞추는 담합에 나서 원성을 더욱 키웠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에서 같은 날짜에 원생 추첨을 하는 유치원이 계속 나타나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조사를 의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