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험·중수익’과 ‘절세’의 미덕을 살린 상품들이 올해 투자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폭락장의 상흔이 아직 남아있는 데다 주식시장이 박스권에서 움직이면서 ‘화끈한’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도 다소 변했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저금리 기조로 인해 목표 수익률이 낮아져 중위험·중수익 상품의 수요가 커졌다. 또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활발한 증세 논의는 자연스럽게 절세 투자상품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올 상반기 가장 인기를 끈 상품은 중위험·중수익의 대표격인 주가연계증권(ELS)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분기 ELS 발행금액은 직전 분기보다 72.8% 증가한 13조1384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기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분기에도 1분기보다 6.6% 늘어난 14조28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발행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하지만 증시가 박스권에서 움직이면서 변동성이 작아지자 ELS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졌다. ELS의 바통은 하반기 파생결합증권(DLS)이 이어받았다. ELS 발행액은 3분기에는 10조2613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DLS 발행금액은 3분기 7조4069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ELS와 DLS는 모두 기초자산 등락에 따라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수익을 얻는다. DLS는 주가지수나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와는 달리, 금·은·원유·농산물 등 상품이나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주가와 상관관계가 낮아 증시의 대체투자 수단으로 이용된다.
해외채권형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도 중위험·중수익 상품 열풍의 수혜를 입었다. 4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말 3조3000억원 수준이었던 전체 해외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올해 들어 꾸준히 증가, 최근 6조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증시의 답답한 움직임으로 주식형 펀드의 수익이 저조하고 세계 경기마저 부진의 늪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저금리, 저성장 상황에서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올해로 시장 개장 10주년을 맞은 ETF도 분산투자와 다양한 지수·업종의 기초자산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욕구와 맞물려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정치권의 증세 공약에 물가연동채권 등 절세 상품도 필수가입 금융상품으로 부각됐다. 국회에서 재논의 얘기가 들리지만 일단 즉시연금은 내년부터 비과세 혜택이 사라질 전망이다. 이 덕에 많은 투자자들이 절세 혜택을 받기 위해 연내 가입을 서두르면서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물가연동국채도 원금 증가분에 대해 2015년 발행분부터 과세된다. 연간 400만원 한도로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연금펀드도 연말이 다가오면서 직장인들의 가입이 급증했다. 금융소득을 월별로 나눠 받아 절세혜택을 누릴 수 있는 월지급식 ELS도 새로운 투자 대안으로 부상했다.
반면 증시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증시관련 간접투자 상품은 쓴맛을 봤다. 지난해 열풍을 일으키며 9조원대까지 치솟았던 자문형랩 평가금액은 지난 9월말 현재 4조2000억원대까지 내려 앉았다. 자문형랩의 부진에 자문사들도 철퇴를 맞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결산법인인 투자자문사 149개사는 올 상반기(4~9월)에 총 7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자문사는 45개에 불과했다. ETF를 제외한 국내주식형펀드는 연초 이후 4조원 이상 순유출되는 등 투자자들의 엑소더스에 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