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자녀를 둔 주부 신정연(가명ㆍ36)씨는 최근 단기 사무보조직 자리를 얻어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다. 대졸자에 출판편집과 웹디자이너로 7년간 근무한 적도 있었지만 4년간의 긴 공백 탓에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들처럼 온종일 일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야 하는 처지에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신씨는 감사했다.
한국사회가 ‘일자리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4년간 취업자의 절대숫자는 늘고 3%대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경제활동인구대비 취업자비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일자리의 질도 악화일로다. 비정규직 등 불완전 고용과 영세 자영업자수가 크게 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도 여전하다. 20대 고용은 5개월째 역주행하며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다. 껍데기 뿐인 ‘고용대박’에 피부로 느끼는 고용환경은 더 춥기만 하다.
◇허울뿐인 ‘고용대박’…저조한 경활인구로 인한 착시효과 =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내놓은‘한국 고용의 현주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취업자 수(15~64세)는 2261만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2개국 중 8번째였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급감했던 취업자 수가 지난해 41만5000명 늘어난 탓이다. 한국의 작년 실업률(15~64세)은 3.5%로 OECD 국가 평균 8.1%의 절반에 못 미쳤다. 노르웨이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통계상 우리나라의 고용 상황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6.2%로 OECD 평균(70.6%)에 못 미쳤다. 경제활동인구에 대한 실업자수 비율이 실업률임을 감안하면 실업률이 낮은 것은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에 따른 착시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청년층(15~2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5.5%로 뒤에서 세 번째였다. 고학력, 군복무로 인한 취업 공백,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이 원인으로 꼽혔다. 한창 일해야 할 젊은 일꾼들이 고용시장의 주변인으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취업자 숫자는 높아졌지만 고용탄성치(경제성장률 대비 취업자수 증가율)는 0.29로 독일(0.93), 호주(0.86), 프랑스(0.47) 등 선진국보다 낮았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취업자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청년실업 해소한다고 대규모 청년 비정규직만 양산= 경제활동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도 최근 4년새 더 줄었다. 설훈 민주통합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기간 경활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2003년 96.44%에서 2007년 96.77%로 0.33%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MB 정부에서는 2008년 96.84%에서 올해 2분기 96.48%로 0.36%포인트 줄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청년층 취업 비중은 감소하고 대부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에서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28.64%에서 지난해 32.87%로 4.23% 증가한 반면, 20대의 경우 17.04%에서 15.06%로 1.98% 감소했다.
중장년층의 고용 증가도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다. 경기 침체와 베이비부머 은퇴 러시로 재취업이나 창업이 늘어 저부가가치의 서비스업과 자영업 형태의 불안전 취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떠오른 자영업자 수는 지난달까지 14개월 연속 늘었으며 주 36시간 미만 단기 근로자는 지난해 91만7000명 급증, 전체 근로자의 18.7%를 차지했다.
청년층의 경우 일자리가 줄면서 불완전 고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힘들어 애초에 구직을 단념하는 젊은층이 늘고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 비정규직 증가는 정책 실패도 한몫 했다. MB정부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겠다며 2008년부터 공공기관 청년인턴제를 실시해오고 있다. 공공기관 신규 정규직의 20%를 청년인턴 경험자로 선발하도록 돼 있지만 인턴의 정규직 전환율은 한자리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인턴 채용 및 정규직 전환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공공기관이 채용한 청년 인턴 1만1017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는 490명으로, 전체 인턴의 4.4%에 그쳤다. 2010년과 지난해 정규직 전환비율도 각각 4.1%와 12.7%에 불과했다. 정부가 대규모 인턴만 비정규직만 양산한 채 안정적인 고용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잡쉐어링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높여야 = 우리나라 고용대란은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 같은 근시안적인 정책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고졸 고용 활성화, 보육지원 증대, 시간제 일자리 확충 등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고용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 정책으로 ‘일자리 나누기(잡쉐어링)’를 꼽는다. 작년 우리나라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4.6시간을 OECD 평균 수준인 36시간으로 줄이면 근로자 4.5명당 1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현재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수 1785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약 397만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다만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줄어든 근로시간만큼의 임금손실분은 정부가 근로자들에게 지원해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시간제 근무 등을 확대해 평균 근로시간을 줄이고 전체 고용을 늘리는 잡 쉐어링 제도가 강화된다면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떠오른 영세자영업자 증가 현상을 줄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직업의 안정성’ 대신 ‘고용의 안정성’이 중요시돼야 일자리 창출이 용이해진다” 면서 정부, 기업 노조 등 당사자 간 타협·양보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