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출총제는 기업집단 내에서의 출자를 제한하는 ‘순환출자금지’와 달리 기업집단 밖의 다른 기업에 대한 출자를 제한하는 것이다. 순환출자가 대기업 집단 내 기업 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그룹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된다면 출총제는 그룹의 외연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후보 측이 내놓은 것처럼 ‘순환출자금지’와 ‘출총제’를 동시에 적용할 경우 그룹 지배구조 약화는 물론 신규사업 진출 길이 완전히 차단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박근혜 후보 측도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부분출종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 후보가 내놓은 출총제는 공기업을 제외한 10대 대기업 집단에 한해 도입되는 것이지만 기준은 2009년 출총제 폐지 이전보다 강화됐다. 폐지 이전 규정에는 자산 10조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이 순자산의 40%까지 출자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30%로 제한된다. 30%를 초과하는 출자는 3년 유예기간을 줘 자율적으로 해소하도록 했다.
문 후보 측이 출총제를 재도입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계열기업 확장을 막고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문 후보 캠프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총수가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고 편법적으로 재산을 상속하는 구조가 계속되면 새로운 대기업이 출현하기 어렵고 중소기업이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며 “출총제는 장기적으로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출총제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박근혜 후보 캠프는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출총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 캠프 핵심관계자는 23일 “재벌 내에서 순환출자로 연결된 계열사들에 대해서만 출총제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종전의 촐총제와는 달리 순환출자 해소만을 목적으로 출총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부분출총제 개념이다.
이 방안은 국민행복추진위 산하 경제민주화추진단에서 검토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내 경제민주화실첨모임은 이와 별도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공약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와 관련, “부분출자총액제니 하는 건 아직 이름 붙인 건 없고 경제민주화를 하면서 검토 중인 것은 맞다”며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고 반대 의견도 있어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안철수 후보 캠프는 출총제 도입에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대기업 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계열분리명령제 등을 통해 사후 규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 캠프 전성인 경제민주화포럼 대표는 “출총제는 어떤 의미에서 그 제도가 갖는 정책적 효과보다는 재벌개혁의 상징이나 이념적 표상이 되었다는 느낌이 많다”며 “지금 도입할 긴박한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재계, 대기업은 신규사업 하지 말라는 얘기 = 문재인 후보의 출총제 재도입에 이어 박근혜 후보 측이 기존 순환출자를 규제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업의 투자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 후보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부분 출총제를 적용할 경우 삼성그룹은 10개사 안팎, 현대차그룹은 5개사 안팎의 계열사들이 각각 규제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과 한화, 현대그룹 등은 당장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장 적용 대상이 되는 그룹들은 골목상권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기업들”이라며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하자는 것은 기업에 신규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똑같다”고 지적했다.
◇용어설명
출자총액제한제도 =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회사가 순자산의 일정비율을 초과해 다른 기업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한 제도. 대기업의 무분별한 기업 확장을 막기 위해 1987년 처음 도입됐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폐지됐다 1999년 다시 도입됐으며 2009년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다. 폐지 이전 출총제 기준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이 순자산의 40%를 넘겨 계열사와 국내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