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를 일궈냈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대로 가라앉고 말 것인가. 수렁에서 훌훌 털고 빠져나와 대한민국의 샐러리맨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것인가.
윤석금 회장의 SWOT를 분석해봤다. SWOT는 ‘Strength(강점)·Weakness(약점)·Opportunity(기회)·Threat(위협)’의 약어다. 강점과 약점은 내적요인, 기회와 위협은 외적 요인을 주로 말한다.
윤 회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일즈맨 출신이다. 자신만의 메뉴얼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사전을 팔며 판매왕에 올랐다. 출장을 떠날 때면 반드시 팔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식사비와 숙박비를 들고가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지에서 계약금을 받아야만 먹고 잘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한 도전정신이었다.
학습 테이프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도 기록했다. 또 학습지 업계에서 전례가 없던 1년치 구독상품도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렌털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강한 도전정신에서 나온 성과다.
또 다른 강점은 긍정적인 마인드다. 그의 저서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항상 강조해 왔다. 긍정적인 사람이었기에 샐러리맨 생활을 하며 판매왕이 될 수 있었고, 위기에서도 긍정적 생각으로 이겨내며 창의적 발상을 해냈다. 이번 위기에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엿볼 수 있다.
◇ 약점, 지나친 긍정과 도덕성 논란 그리고 자신감 상실 = 윤석금 회장의 약점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지나치게 긍적적이라는 점이다. 윤 회장은 스스로의 능력을 믿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위기때마다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왔다. 하지만 긍정에서 비롯된 지나친 자기 자신의 능력 과신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이어졌고, 이번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또 다른 약점은 승승장구하던 그룹이 무너지며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그가 실패를 맛보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이렇게 큰 실패는 처음이다. 재벌기업 오너 2세들과 달리 맨손으로 거대그룹을 일궈낸 윤 회장에게는 도움을 줄 주변 인물이 적고, 뿌리도 약하다. 자신감과 도전정신마저 잃어버린다면 예전 ‘신화’의 주역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번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빚었던 도덕성 논란도 약점이다. 윤석금 회장이 그룹 경영권 유지를 위해 고의적으로 법정관리를 선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깔끔했던 이미지에 흠이 생긴 것이다.
결국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지만 윤 회장이 채권단과 정치권의 압박에 부담을 느껴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에 기업회생 법정관리인으로 윤 회장의 오른팔인 신광수 웅진홀딩스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영향력을 여전히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법원이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을 수용하고 향후 경영이 정상화되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면 법정관리 종료 후에도 웅진그룹의 전망은 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위협, 태양광 불황과 인재영입 어려움 = 윤 회장에게는 위협 요인도 많다. 먼저 태양광 산업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려 했던 것도 결국 태양광 살리기를 위한 자금 마련 때문이었다.
태양광 소재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은 지난달 셋째주 처음으로 20달러 선이 붕괴된 이후 3주간 계속해서 20달러 아래에 머물고 있다. 공급과잉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격 하락세도 좀처럼 반전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태양광 업체들이 앞으로 상당 기간 출혈 경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태양광 산업이 되살아 나지 않는다면, 윤석금 회장과 웅진의 부활은 요원하다. 건설 업황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점도 극동건설의 앞날을 장담하지 못하는 위협 요인이다.
인재 영입에 어려움이 크다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윤 회장은 MBA 출신을 과신하며 실패를 맛봤다. 그룹 위기의 진원지인 극동건설 인수와 저축은행 인수, 태양광 사업 진출 등도 이들의 작품이다.
기업이 성장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인재다. 윤 회장이 부활하기 위해선 인재라는 날개를 다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웅진 사정 상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외부 인재 영입에만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오랫동안 일한 내부 출신 인사들은 찬밥신세가 됐다.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떠나간 고위직만 1년새 10여명에 이른다. 결국 내부인재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외부인재를 영입하는 작업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 기회도 있다 = 윤석금 회장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성공적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법원은 지난 11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관리인은 조만간 채무변제 방안 등이 담긴 회생 계획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법원은 패스트 트랙(회생절차 조기 종결 제도)을 적용해 신속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관리인의 회생 계획안이 인가돼 회생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웅진홀딩스는 이르면 내년 초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도 있다.
최대 관건은 웅진코웨이의 신속한 매각이다. 채권단은 웅진코웨이 조기 매각에 적극적이다. 가장 우량한 ‘담보’인 웅진코웨이 매각 대금 외에는 웅진그룹이 당장 유동성을 확보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웅진코웨이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도 매각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 문제는 웅진홀딩스 지분 70%를 보유한 윤 회장과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 매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이다.
윤 회장이 웅진코웨이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모두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초심으로 돌아간 윤석금 회장이 성공적인 재기를 할 수 있을지 모든 샐러리맨들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