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범야권 유력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한 지 1년 만에 그는 ‘18대 대통령 후보’라는 이력을 추가하게 됐다.
안 교수는 자서전에서 “선택 이후의 변화를 두려워해 의대 교수에 머물렀다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이렇게 풍부한 삶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라고 썼다. ‘의사→컴퓨터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래머→벤처 사업가→대학교수’로 이어진 삶의 2막인 셈이다.
안 교수는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나 1980년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 심정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을 전공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를 땄고 의대 재학 중 1982년 안랩의 시초가 된 컴퓨터를 접한 후 국내 최초로 백신 프로그램 ‘V3’를 개발했다.
이후 1990년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의 나이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지냈다. 그로부터 7년간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개발 프로그래머’라는 이중생활을 하게 됐다.
벤처신화의 주인공 중 한명이던 안 교수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추게 된 것은 2009년 6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다.
그는 여세를 몰아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청춘콘서트’ 라는 이름으로 진학, 취업 등에 지친 젊은이들을 위로하면서 ‘젊은이들의 멘토’로 부각됐다. 이후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후보에게 후보직을 전격 양보,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안철수 신드롬’이 불었다.
그 뒤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오른 안 교수는 오랜 잠행으로 신비감을 증폭시키며 인기를 높여왔다. 지난 7월에는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힌 ‘안철수의 생각’을 발간하면서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사실상의 대권주자 행보를 하면서도 정치참여 여부에 대해선 애매한 화법으로 일관해 ‘국민적 피로도’가 쌓였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안철수 열풍’이 지속되자 그는 “국민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겠다”면서 각계각층의 국민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대선을 91일 남긴 9월19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기성 정당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점은 안 교수에게 약이자 독이다. 정치권과 거리가 있다는 것은 조직적인 세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적합한가라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안 교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과 이를 뒷받침할 인적 네트워크 등 준비 상황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성 정치권에 피로를 느낀 유권자들에게 안 교수의 전무한 정치경험은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에 화답하듯 안 교수는 “정치경험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며 “빚진 게 없는 대신,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가 대권 출사표를 던지면서 정치권의 검증 공세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 안 교수의 대응 방안도 대권행보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도 향후 풀어야 할 과제다. 안 교수가 독자후보로 계속 뛸 수도 있지만 다자구도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게 대다수 관측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컨벤션효과를 누리면서 안 교수의 지지율을 앞서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안철수 약력>
△1962 부산 △서울대 의과대학 석·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안철수연구소 창업자 겸 대표이사 △포스코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2009 취업 준비생이 가장 존경하는 CEO 1위 △2009년 포춘코리아 선정 ‘21세기 첫 10년 최고의 CEO’ 4위 △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