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치더라도 권투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 여배우라는 사실은 좀 아이러니컬하다. 배우 이시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작년 아마추어 권투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눈길을 끌더니 급기야 전국체전 예선에서도 우승을 한 모양이다. 우람한 체격을 상품으로 했던 배우가 아니어서 그런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거기다 동영상을 보니 실력도 만만치 않다. 안정된 자세나 공격의 적극성 등으로 보아 하루이틀 연습한 것도 아닌 듯 하고 권투에 대한 애정과 열의가 펀치 하나하나에서 튕겨나온다.
이시영이 언론에 주목을 받다 보니 챔피언 홍수환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중년인 사람들에게 아직도 생생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을 만들어냈던 과거의 그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의 모습은 남아 있었다.
홍수환, 유제두 등의 경기를 지켜보며 흥분과 기쁨을 맛본 세대로서 권투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 늘 안타까웠는데 한순철 선수의 은메달 획득으로 모처럼만에 권투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보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이를 계기로 권투가 과거의 영광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포츠로서 당당한 자리를 지켜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업화와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소프트한 것이 가치를 높여가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권투가 가진 하드함을 마냥 무시해서도 안된다. 지금도 중동의 어느 지역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 사회 한구석에서도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이 줄을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권투는 여전히 중요한 스포츠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전통적인 남성적 가치를 지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권투가 '눈물 젖은 두만강' 처럼 흘러간 세대만이 공감하는 그런 오울드한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미모의 여배우가 확인시켜 주었다면 한순철 선수의 은메달이 불쏘시개가 되어 다시금 권투가 활기를 되찾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