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마약 청정지대’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관세청 분석 결과 지난해 국내로 밀반입되다 적발된 마약류는 전년 대비 110% 급증했다. 마약 밀매량뿐 아니라 밀반입되는 신종마약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마약사범의 수도 지난 1999년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선 이후 2002년 정부의 강력 단속에 힘입어 2003~2006년까지 7000명선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체류 외국인 증가, 클럽 신종마약의 다양화 등으로 다시 1만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LSD, 스파이스, GHB 등 향정신성 마약 복용 비율은 1990년대 후반까지 50%를 상회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01년 78.8%로 급증한 데 이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더니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향정신성 마약 사범도 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향정신성 마약 사범은 7226명으로 전년(6774명)에 비해 6.7% 증가했다. 신종마약의 경우,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 학원강사, 조선족, 해외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등이 늘어나면서 밀반입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재외동포들은 외국에서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고 구하기 쉬운 신종 마약복용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2000년 이후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적극 유치정책을 펼치면서 통관절차를 간소화했다. 이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중심으로 마약류 사범이 대폭 증가한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인과 중국인의 필로폰 밀매, 태국인 근로자들의 신종 마약 ‘야바’ 복용이 크게 늘었다.
지역별로 향정사범의 점유율(2010)을 보면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인천·경기지역(26.6%)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21.8%), 부산(15.6%), 울산·경남(10.8%) 순으로 나타났다.
외국에서 들여온 신종 마약류는 국내법 적용을 받지 못해 처벌이 어렵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식약청은 ‘임시마약류지정제도’를 마련해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만 법적 처벌이 어려운 마약류를 집중 관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임시마약류로 지정된 마약은 ‘배쓰솔트’ 단 1건 뿐이다.
◇의료용 마약 오·남용도 심각해=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도 마약복용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프로포폴이 대표 사례다. 현재 마약류로 지정돼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타민 주사’, ‘피로회복제’라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돼왔다. 식약청 통계에 의하면 2000~2009년 프로포폴 관련 부검 및 감정의뢰는 39건으로, 그 중 사망사건은 34건에 달한다.
의료용 마약의 도난 및 파손사고를 당하는 의료기관의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위 소속 주승용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병·의원에서 발생한 의료용 마약의 도난 및 파손사고는 2007년 445건(83개 병·의원), 2008년 444건(86개), 2009년 362건(90개), 2010년 525건(162개)로 늘고 있다.
이 가운데 빅5 의료기관(세브란스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에서의 의료용 마약 도난 및 파손사고가 전체 2159건 가운데 1181건(55%)을 차지해 대형병원에서의 마약류 오·남용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청 마약류관리과 관계자는 “전국의 모든 병·의원의 장부를 모두 꼼꼼히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력 등 여건이 부족하다”며 “정기적인 단속 및 합동 단속을 통해 계속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검·경의 꾸준한 단속과 정부관리에도 마약복용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총괄기구의 부재를 꼽는다.
현재 해외로부터 밀반입되는 마약류 단속은 관세청에서 하고 신종 마약을 지정하는 것은 식약청에서 담당하고 있다. 국내 확산을 막기위한 단속은 검·경이 하고 있다. 또 마약복용 및 폐해 예방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마약환자 치료는 복지부 산하 병원이 각각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마약 관리가 각 부처나 기관별로 분산돼 있어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관리정책을 펴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기획홍보과장은 “미국의 경우 DEA와 같이 마약문제를 총괄하는 콘트롤 타워가 있지만 한국은 담당기관별로 따로 진행되고 있다”며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마약퇴치를 위한 총괄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