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셈법을 조금만 바꿔서 해석해보자. 대박 영화 한 편이 있다. 극장주 입장에선 관람율이 떨어지는 영화를 내리고 그 자리에 대박 영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멀티플렉스란 기발한 시스템이 도입됐다. 1998년 초 국내 한 대기업이 처음 도입했다. 적게는 4~5개관에서 많게는 10여개가 넘는 관이 한 극장에 존재한다.
이런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난립하면서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이 자연스럽게 도드라졌다. 실질적인 스크린 쿼터의 붕괴를 의미한다. 한국영화의 의무 상영일수인 ‘스크린 쿼터’를 지키면서 이른바 ‘장사되는 할리우드 영화’를 통한 매출 증대를 꾀하기 위해선 멀티플렉스가 정답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배급사들은 앞 다퉈‘되는 영화’들을 대량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개봉한 ‘트랜스포머 3’의 경우 국내 전체 유효 스크린 수의 67%를 점령했다. 당시 이 영화의 앞뒤로 개봉한 여러 영화들이 맥을 못추고 기권했다. 일부 영화 팬들은 ‘볼 영화가 없다’며 성토의 글을 온라인으로 쏟아냈다.
최근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역시 50%가 넘는 스크린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실제 시내 한 멀티플렉스 극장은 8개 상영관 중 5개가 이 영화 차지다. 영화 팬들의 선택권 박탈이란 해석까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영화 관계자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스크린 점령을 꼭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5일 개봉한 ‘연가시’ 관계자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오히려 여러 경쟁 영화를 정리해 줬다. 공교롭게도 호재로 작용할 듯하다”고 해석했다. 타깃 층이 확실히 분리되는 두 영화의 맞불 작전은 오히려 시너지 효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랜스포머 3’ 개봉 당시에도 ‘써니’와 ‘풍산개’ 등이 맞불 작전을 펼쳤고, 예상외의 선전을 했다.
오는 19일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코믹스 원작의 히어로 무비를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걸작 반열에 올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3부작 중 완결편이다. 이미 할리우드 현지에선 ‘걸작’이란 평가가 나오면서 같은 블록버스터들조차 맞대결을 피하는 분위기란다.
한 영화 관계자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경우 70% 이상의 스크린 점유율이 예상된다”면서 “오히려 중소규모 영화가 노려볼 수 있는 틈바구니가 확실하게 있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스크린 점유율이 독과점일지, 흥행 전략의 다른 해법일지는 종이 한 장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