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보다 강력한 유혹 = 대학로 작은 소극장 무대, ‘위대한 탄생’ 윤채영의 첫 등장 후 객석 곳곳에서는 “어디서 봤지?”, “얼굴이 낯익네?” 등 소곤소곤 귓속말 대화가 흘러나온다. 뮤지컬 배우로서는 첫 걸음이지만, 앞서 스크린에서 펼친 강렬한 연기 덕분이다. 윤채영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의 손아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간호사로 눈도장을 찍었다. 다소 통통한 몸매, 순진한 듯 아닌 듯 묘한 분위기를 풍겨 남성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그가 바로 윤채영이다.
“뮤지컬을 보고나서 제 이름을 검색해보고서 ‘아, 그 간호사’하고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요. ‘악마를 보았다’의 윤채영을 기억하시고 일부러 공연장을 찾아주신 팬 분도 있죠. 오신 줄도 몰랐는데 ‘공연 잘 봤다’, ‘반가웠다’ 등 리뷰를 전해주는 팬들을 보면, 미리 알아채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기존에 알고 계신 분들에게는 색다른 느낌을 안겨드릴 수 있어 좋아요. 이태권, 구자명 등 오디션 스타를 보러왔다가 제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를 얻어가시는 관객들도 있으니 기분이 좋죠.”
사실 ‘위대한 탄생’은 뮤지컬 자체로서 매력보다는 오디션 스타들의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추억을 회상케 하는 의미가 큰 공연이다. 이태권의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Bad case of loving you)’, 푸니타의 ‘텐미닛(10minutes)’ 등을 한 번 더 듣고 싶은 기존 팬들이 객석의 상당수다. 연기 경험이 없는 주연 배우들을 대신해 조영빈, 이종호, 장성국 그리고 윤채영 네 배우가 극의 빈틈을 메운다. 뮤지컬 무대 위의 스토리라인 연계를 위한 탄탄한 연기,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애드리브 등은 모두 이들의 몫이었다.
“사실 저도 무대 연기는 처음이거든요.(웃음) 아무래도 주연을 맡은 친구들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다보니까 공연 기간에도 몇시간씩 더 일찍 와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대부분의 뮤지컬은 사전 연습기간 후, 실제 공연 기간에는 컨디션 조절과 단점 보완 정도가 연습의 전부다.) 무대 경험은 없어도 연기 경험은 제가 좀 더 있으니까 주연 배우들이 질문을 하면 도움을 주게 됐죠. 그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해주면서 저도 공부가 됐어요. 같이 무대에 오르는 조영빈, 이종호 등 희극 배우들에게는 제게 없는 희극 요소를 배울 수 있어 좋았죠.”
“진로전향을 결심하고 부모님 앞에 장렬하게 무릎을 꿇었죠.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지만 연기를 해야겠습니다’라면서요. 그림을 그리길 바랐던 부모님이 반대를 하실 줄 알았는데 흔쾌히 그러라고 믿어주시더라고요. 지금은 제 연기에 대해서 가감없이 지적과 칭찬을 해주세요. 가족들의 날카로운 모니터가 저를 성장시켰어요.”
뮤지컬 ‘위대한 탄생’은 30일로 막을 내린다. 한 달 간 공연은 윤채영에게 값진 선물을 안겼다. 비극 전담 배우였던 그는 ‘위대한 탄생’에서 객석의 폭소를 이끌어내는 감초 캐릭터로 새 옷을 입었다. 붉은 립스틱에 애교점을 찍고 오른 무대에서 제 안에 숨겨져 있던 희극 본능이 눈을 떴다. 배우로서 제 2막의 시작이다.
“그동안에는 ‘나는 여배우니까’라면서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번 뮤지컬 공연을 통해서 저 스스로를 풀어놓고, 마음껏 노는 법을 배웠죠. 이제는 어떤 캐릭터이든지 ‘일단 해보죠 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다이어트도 좀 할 거예요. ‘악마를 보았다’의 간호사 역할을 하면서 살을 찌웠거든요. 통통한 윤채영말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배우 윤채영은? = 1984년 3월생.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2006년 드라마 ‘주몽’을 통해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영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2007)의 주연 남장희 역을 통해 스크린에 진출, ‘은하해방전선’(2007), ‘악마를 보았다’(2010), ‘가시’(2012) 등에 출연했다. 올 6월 창작 뮤지컬 ‘위대한 탄생’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활동 반경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