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총재는 최근 불황기에는 돈을 찍어내야 한다는 케인스 경제학을 ‘케인시안 포퓰리즘’이라고 지칭했다. 케인스 경제학의 권위자이자 “미국 정부가 돈을 더 풀어 고실업·저성장을 막아야 한다”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대척점에 선 것이다.
미국, 유럽 등은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실행할 채비다. 김 총재의 날선 비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선진국 정책, 비판적 검토해야= 김 총재는 14일 선진국의 재정·통화확대 정책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글로벌위기 이후의 통화 및 거시건전성 정책’이란 주제로 열린 ‘한은 국제컨퍼런스’에서였다.
그는 “선진국의 적극적 정책이 위기를 수습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국제적인 스필오버 이펙트(Spillover Effect, 파급효과)를 감안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이어 “위기 수습과정에서 사용된 정책수단이 효과적이었는지 여부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선진국들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었다. 그러나 정작 이 같은 정책이 신흥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검토는 부족했다는 김 총재의 지적이다.
김 총재는 “신흥국의 과도한 자본유출입은 통화정책 운용을 제약했다”며 “환율 변동성 확대로 교역재 부문의 경쟁력 약화 등 실물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관심사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 역할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과도한 확대는 향후 정책운용을 제약할 수 있다”며 “과도한 유동성 공급은 여타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통화정책은 만능이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 유동성, 통화정책 교란= 이날 열린 컨퍼런스에서 선진국의 통화 완화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김 총재만이 아니었다.
신현송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중앙은행의 단기금리 조정→장기금리→소비 및 투자로 이어지는 통화정책의 전통적 전달 경로는 글로벌 유동성으로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흥국이 시중유동성 흡수를 위해 금리를 올리면 해외자본이 유입되면서 되레 유동성이 더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저금리가 국가 간 자본이동을 1차적으로 촉발하는 핵심 요인이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본유입국은 환율 절상(환율 하락) 속도를 완화하는 것이 기업의 과다 헤지→은행의 추가차입→원화절상 가속화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제안했다.
에스와르 에스 프라사드 코넬대학 교수는 “신흥국은 선진국 경제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필오버이펙트= 한 영역에서 일어난 경제·금융 현상이 다른 영역에 파급되는 것을 뜻한다. 김 총재는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이 신흥국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