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드라크마겟돈’을 아십니까

입력 2012-05-22 09:00 수정 2012-05-2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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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부 차장

‘신(新) 그리스 신화’가 뜨고 있다.

기존 그리스 신화가 제우스와 헤라클레스 같은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창세(創世) 전후의 이야기였다면 신 그리스 신화는 세상의 종말을 주제로 한 말세(末世)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새로운 그리스 신화의 제목은 ‘드라크마겟돈(Drachmageddon)’.

그리스의 옛 통화인 ‘드라크마(Drachma)’와 신들의 최후의 전쟁터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한 신조어다.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했을 때 우주로 퇴출됐던 드라크마가 운석과 함께 지구로 되돌아와 모두를 파괴해버린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공상 과학 소설로 치부하기엔 현실감이 너무 강하다.

현재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과 그 충격파를 절묘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그리스 총선에서 제2당으로 부상한 급진좌파연합(SYRIZA·시리자)은 내달 치러지는 2차 총선에서 집권해도 유로존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독일의 주도로 유로존의 회원국들 사이에 문제아 그리스를 퇴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허리띠만 졸라 매면 구해주겠다고 나섰던 유로존 회원국들도 세계를 갈수록 침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그리스의 도덕적해이를 더 이상 봐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애초에 가입 시키지나 말 것을…”

지난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는 그리스의 가입을 후회하는 성토장이 됐다고 한다.

그리스 국민들도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신화의 도시 아테네에서 노숙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걸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을 목격하고서야 말이다.

아테네를 불바다로 만들 정도로 격렬했던 긴축에 대한 반대 시위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반(反) 긴축 재정 정책을 내세워 제 2당으로 약진한 시리자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지난 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제 지원을 요구하는 신민주당(ND)의 지지율이 시리자를 넘어섰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로 신이 난 건 지폐인쇄업계 뿐이다.

세계 최대 지폐인쇄업체인 영국 델 라 루는 그리스가 유로화 도입 전에 사용하던 드라크마 인쇄 계획이 한창이다.

당연히 그리스 국내 업체가 드라크마를 찍어야 하지만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그럴만한 여력이 있겠느냐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하지만 드라크마가 부활하더라도 한 동안 종잇장에 불과할 수 있다.

유로존에서 이탈할 경우 신 드라크마 가치는 최대 70% 폭락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하면 그리스에서는 이민 행렬이 펼쳐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것이 드라크마겟돈의 실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한다는 가설은 악몽의 서막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스는 국제 사회와의 긴축 이행 약속을 지켜 마지막까지 유로존에 잔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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