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이랬다. 100억대 대형 프로젝트 영화 ‘미스터K’의 연출을 맡은 이명세 감독이 갑작스럽게 하차가 결정됐다. 총 11회 차를 찍고 메가폰을 내려놨다. 이 감독은 ‘하차’가 아닌 ‘당했다’로 표현한다. 제작사인 JK필름과 투자사 CJ엔터테인먼트의 압력 때문이란다. 무슨 말일까.
태국 5회 촬영분과 국내 6회 촬영 분 도합 11회 촬영분의 1차 편집본을 본 제작-투자사가 일종의 클레임을 걸었단다. 당초 생각했던 그림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기 때문이 밝혀진 이유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가보자. 이명세가 누군가. ‘비주얼리스트’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연출 세계를 가진 감독이다. 투자사와 제작사는 1차 편집본을 본 뒤 “내러티브는 없고, 비주얼만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 제작사인 JK필름 대표 윤 감독이 이 감독을 캐스팅 할 당시 나온 말을 보자. “선배님 절대 ‘M’처럼 찍으시면 안됩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M’은 독창적인 영상미에 반해 난해한 내러티브로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다시 돌아오자. 윤 감독은 이 감독에게 연출권을 맡겼다. 이 감독은 최대한 자본의 입장을 고려해 찍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것이다. 상업영화감독으로서의 기본적인 책임감은 전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이제 의문점이다. 이 감독은 투자사와 제작사가 걱정하는 부분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을까. 장편 영화 스케줄 상 11회차 촬영 분은 초반 도입 정도의 러닝타임 분량이다. 그 정도로 이 감독의 ‘디렉션’을 문제 삼는 게 타당한가.
그럼 윤 감독으로 문제를 돌려봤다. 이 감독이 비주얼리스트란 사실은 영화나 언론계를 넘어 일반인들도 아는 상식이다. 그런 점을 모를 리 없는 윤 감독이 이 감독에게 100억대 프로젝트를 맡기며 ‘내러티브’를 강조했다. 그런데 결과가 그렇지 않았다. 이 감독이 주장한 ‘하차 당했다’와 달리 윤 감독은 ‘잠정 촬영 중단일 뿐’이라며 이 감독의 주장을 반박했다. 결국에는 이 감독이 메가폰을 내려놓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상식선에서 가정했다. 기성을 넘어 명장 반열에 오른 두 사람이다. 일 처리 과정만 놓고 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프로를 넘어선 이들 두 사람이 벌인 일이라기엔 너무도 아마추어적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자본’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단 주장이 성립된다. 현재 충무로는 거대기업 자본의 수직지배구조가 정착된 상태다. 상업 영화이기에 자본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은 ‘제2의 르네상스’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영화계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
최근 10억대 예산 영화를 준비 중인 한 제작사 대표가 푸념을 늘어놨다. “제작-투자-배급을 넘어 이젠 연출권까지 거대기업이 잠식하려 한다”면서 “한 감독은 차라리 집 팔아 내 맘대로 영화 찍는 게 지금의 충무로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감독들이 꾸는 꿈이 되버렸다고 하더라”며 한탄했다.
우리가 배꼽 잡으며 웃고, 때론 눈물 흘리며 감상하는 영화. 그 이면에 이런 더러운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