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국내은행에서 한 숨 돌리는 일이 있었다. 미국의 ‘볼커룰’ 시행이 2년 간 연기됐기 때문이다. 볼커룰은 미국 금융기관의 위험투자를 제한하고 대형화를 억제하기 위한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은행은 자기자본으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자본금 3% 이상을 투자할 수 없게 돼 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이 한 숨 돌린 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법안은 미국에 진출한 현지 법인이나 지점의 모회사까지 규제가 적용되도록 명시했다. 미국 현지 은행들의 역차별을 우려해서다. 이 같은 법 조항 해석은 우리나라의 미국 현지법인뿐 아니라 모회사까지 규제란 불똥이 튈 수 있다. 국내 은행이 미국 법인을 대상으로 한 사모펀드, 헤지펀드 거래가 제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중은행 한 해외사업그룹 담당자는 “법 해석뿐 아니라 현지에 나가 있는 지점들의 거래 현황을 모두 재점검해야 할 뻔 했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은행 규제는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바클레이즈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현재 은행권에 대한 규제 수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규제 강화로 은행의 대손충당금이 감소하고 저축은행의 부실 위험이 낮아지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다”고 설명했다.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은행업 규제는 국제기준에 적합하다”며 “은행업의 산업·국가 리스크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시각을 업계로 돌리면 불만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우선 은행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정보·기술(IT) 시스템의 통합이 불가피하다. 해외 지점의 현황까지 속속들여 들여다 보면 효율적인 자산 배분을 하기 위해서다. 현재 금융당국은 국내에 있는 글로벌 기업이 해외 본사와 IT시스템을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은행의 해외진출에 있어 장애물로 여기는 시각이 있어 보안 및 정보보호 문제가 해결되면 중장기적으로 허용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외에 은행권에서는 지난해 도입한 거시건전성부담금도 은행 규제로 꼽고 있다. 거시건전성부담금은 은행의 비예금성 외화부채(전체 외화부채-외화예수금)에 대해 0.5% 한도 내에서 은행세를 매기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급격한 자본유출입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국내은행들은 자산 대비 외화조달 비중이 매우 낮아 부적절한 면이 있다”며 “외화 조달에 대한 규제는 시장 기능은 경직되고 불필요한 사회적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