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도 편리하다. 지하철이 사통팔달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어딜 가든 지하철로 통한다. 목적지에 따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지하철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교통수단. 서울에서 지하철을 편리하게 이용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베이징 지하철 타기 어렵지 않다. 지하철 노선도와 지도, 그리고 튼튼한 다리만 있으면 ‘베이징 구석구석 여행’이 가능하다.
게다가 지하철 노선에는 천안문광장, 자금성, 천단공원 등의 명승고적 외에 중국의 오랜 역사와 숨결, 더불어 사람 사는 냄새가 몰씬 풍기는 ‘입장료 없는 명소’가 보물처럼 숨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보물이 2호선 쳰먼(前門)역에 있다. 황제가 사는 내성(內城)과 백성이 거주하는 외성(外城)으로 통하는 쳰먼. 명나라 때 지은 외성은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던 천단(天壇)으로 출궁할 때 이용했던 길. 백성은 이 길을 쳰먼다제(前門大街)라 불렀다. 청나라에서 민국시기(신해혁명으로 탄생한 중화민국)에 이르기까지 쳰먼다제는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거리였다. 거리 양쪽으로 보석점, 곡물가게, 생선가게, 야채가게와 같은 상점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1950년대 초에는 800여 개의 민간 가게들이 성업했다고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쳰먼다제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멘트 바닥이었던 보행가에 반듯한 돌이 깔리고, 전통양식으로 깔끔하게 복원한 건물마다 붉은 등이 달렸다. 건축물마다 이전의 사진과 설명을 붙여놓아, 지금의 실제 모습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대적 쇼핑거리 왕푸징(王府井)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100년 전통의 쇼핑거리가 이국에서 온 여행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후퉁(胡同)’이다. 베이징을 처음 도읍으로 정한 원(元)나라 때부터 좁고 긴 골목, 후퉁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식수였던 우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어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겨난 집들이 좁을 골목을 형성했다. 골목이 점점 늘어, 1945년 전후에는 4000~60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후퉁이 오죽 많으면 이런 속담이 전해올까. “有名胡同三千六, 無名胡同似牛毛.” 해석하면, “이름 가진 후퉁이 3600개, 이름 없는 후퉁이 소털처럼 많다.” 는 뜻이다.
베이하이(北海)공원에서 스차하이(什刹海, 십찰해)로 이어지는 뒷골목들이 지금까지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였다. 공왕부(恭王府)를 비롯해 괄말약(郭沫若) 옛집, 송경린(宋慶齡) 옛집 등 고위층의 고택이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관직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
베이징 서민들의 숨결과 애환을 느끼고자 한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구러우다제(鼓樓大街)에 내리자. 오래된 후퉁 난뤄구샹(南?鼓巷)에 가보자. 북쪽으로는 구러우다제, 남쪽으로는 디안먼둥다제(地安門東大街)와 만나는 난뤄구샹은 총 길이가 7500m로 일직선으로 곧게 뻗었다. 난뤄구샹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8개, 총 16개의 후퉁이 곤충의 다리처럼 이어진다. 그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한마리 지네 같다하여, 우궁제(蜈蚣街·지네 거리)란 별칭이 전해온다.
원나라 시대에 형성된 이곳은 당시 소규모 상업이 번성했다. 곡물상점, 야채가게, 기름집, 정육점, 국수집, 철물점에 병원이며 약국, 장의사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후퉁이었다. 지금의 난뤄구샹은 우리나라 삼청동을 연상시킨다. 전통적인 고택에 현대적인 카페와 쇼핑점이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