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기업 1위’, ‘제약업계의 명가’ 유한양행의 위상에 적신호가 켜졌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영업이익 반토막, 자체 개발 신약의 매출 급감 등 부진한 실적을 내놓으며 성장 정체의 늪에 빠졌다. 이에 따라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유한양행식(式) 경영에 대한 비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는 높이살 만 하나, 오너십 부재로 자칫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지난해 매출 6676억원과 영업이익 49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10년에 비해 2.8%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무려 46.6% 감소해 반토막이 났다. 특히 지난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5%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한양행은 1926년 설립 이후 동아제약에 이어 제약업계 매출 선두권을 유지해왔지만 이젠 4위자리마저 내줘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지난해 영업이익 감소 원인에 대해 회사 측은 “주요 품목의 특허만료로 인한 약가인하와 시장형실거래가제도 시행으로 매출이 감소했으며 매출원가 및 연구개발비의 증가 등의 영향도 컸다”고 설명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달부터 일괄 약가인하가 본격 시행될 경우 유한양행의 이러한 실적 위축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혜린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도 매출액은 대형 도입신약 출시와 수출 증대로 올해보다 4%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약가인하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2% 감소하는 등 부진을 이어갈 것”이라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실적 하락의 원인이 글로벌 신약 부재와 자체 제품 매출 비중의 감소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먹여살릴 뚜렷한 성장동력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실제 유한양행의 위궤양치료 신약 ‘레바넥스’는 높은 시장 장벽에 부딪혀 지난해 매출(48억원)이 전년에 비해 39.5%나 하락했다.
다국적제약사에 대한 의존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감사보고서 분석 결과 유한양행의 상품매출(남이 만든 제품에 대한 매출) 비중은 2010년 45.9%에서 지난해 52.1%로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을 통한 자체신약이 아닌 영업력 중심의 도입 품목 판매는 결국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다국적사의 도매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전문경영인이 모든 걸 결정하고 대주주들이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유한양행식(式) 경영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투명성과 윤리경영 제고에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책임경영 부재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열린 주총에서 고(故) 유일한 박사의 조카 유승흠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은 “주주들로부터 회사 성과에 문제가 있다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 부실 성과에 대해 책임지는 경영진이 없는 점에 대해 주주들이 분개하고 있다”며 경영진을 크게 질타하기도 했다.
오덕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 연구위원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가 어려워져 책임경영의 부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투자나 신규사업 추진 등 공격경영과 빠른 의사결정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