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전문가는 이번 계기를 통해 국내 제약산업의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길게 볼 때 제약회사가 적정 규모를 갖게 되고 국내 제약산업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일부 전문가는 제약산업의 단기적인 위축이 국내산업 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지원책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약가인하 조치에 제약업계는 울상이다. 업계에서는 충격으로 국내제약산업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결국 국민들이 비싼 외국 약을 먹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한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매출감소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대량실직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며 정부의 지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업계의 목소리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베이트 구조에만 의지해 온 제약업계 고질적 병폐가 개선될 기회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상은 고려대 약대 교수는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100원 받던 것을 85원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제약업체들이 단기적으로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좀 더 가치 있는 약을 개발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이 일반소비자들이 바라는 것이고 소비자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양균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제약업체 수를 줄여나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선진국 가운데 제약회사가 많은 편에 속하는 영국은 220개 수준이다. 반면 국내 제약회사는 약 580개에 달한다. 김 교수는 “영국은 제약수출량이 세계 2~3위권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자국민이 소비한다”며 “시장의 효율 규모를 넘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약가인하가 시행되는 현 시점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실직 등을 유예할 수 있도록 시장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주 비관적인 시나리오지만 중견기업이 너무 단기간에 못 견디고 넘어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약가인하로 절감되는 보험급여비 중 일정 부분을 타격을 많이 받는 기업이나 연구개발 우수기업에 지원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분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이견을 보였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 교수는 “보조가 필요할 정도로 제약산업이 정말 농업처럼 취약한 분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제약산업이 우리나라 고용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리 높지 않은데 그런 식의 논리라면 우리나라 정부는 어떤 구조조정도 해선 안 된다는 말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 교수는 더 단호했다. 국가는 제약사 보조금 지원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것. 그는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가지고 민간 제약사의 연구개발을 지원해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연구개발 특허권이 생기면 이는 제약사의 소유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