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기자는 지난 10일 서울대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 된 박 의원을 만났다.
4년간의 의정활동 기간 내내 북한인권 문제에 온힘을 쏟아온 박 의원은 오랜 단식으로 백혈구 수치가 현저히 낮아져 한 때 음식물 섭취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다행히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희생으로 탈북자 문제에 변화가 일고 있는 데 대해 더 없이 행복해했다. 그는 “너무나 감사했다. 인권에 대해선 젊은 사람들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고 걱정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기뻐한 것과 달리 사실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았다. 박 의원의 실신 소식이 전해진 날 인터넷 상에선 온갖 비난의 글이 쏟아졌다. “실신쇼”라는 주장에서부터 “공천탈락 소식에 졸도한 것”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사진을 보니 립스틱이랑 마스카라 화장을 하셨네요”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는 우리 정부와 중국 측에 아직까지도 할 말이 많았다. 박 의원은 “지난 5일엔 이달곤 청와대 정무수석이 찾아와 ‘지금 대통령도 엄청 노력하고 계시다. 국제연대도 할 것이라는 등의 얘기를 하고 갔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정부가 반짝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면서 “정말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정부가 20년 동안 ‘조용한 외교’라는 미명하에 너무나 많은 북한 주민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었다”고도 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이 문제에 끝장을 봐야 한다”고 할 땐 절박감마저 느껴졌다.
그는 중국 정부를 향해서도 “중국이 21세기 국가로서의 면모를 다지려면 경제보다도 인권을 개선하고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게 훨씬 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탈북자 문제를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것은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에서 보도를 안 해주면 국민들은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알 길이 없다. 이번에 많은 언론들이 협조해 줘서 저희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은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달라”고 언론의 관심도 호소했다.
그는 이날 기자와 인터뷰를 마친 뒤 곧바로 스위스 제네바로 떠났다. 19일 열리는 유엔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CC)에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퇴원 뒤 요 며칠 사이에도 다시 시위에 참여하고 탈북자들의 북송 소식을 계속해서 전했다.
건강 상태가 걱정됐지만 그는 “내 소임을 다할 뿐”이라며 출국을 강행했다. 그는 “지금도 속속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또 있겠느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탈북자에게 있어 박 의원은 한줄기 빛이었다.
◇박선영 의원이 걸어온 길
박선영 의원은 이화여대 법학과, 서울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1989년 MBC보도국 기자로 활동하다 서울대와 가톨릭대 동국대 강단에 섰었다. 2006년부터 2년 간 국민권익위 위원도 지냈다. 2009년 유럽헌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선 2008년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에 진출했다. 4년 간의 의정활동 내내 그는 탈북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최근 단식 시위를 벌이던 중 먼발치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박 의원을 응원하고 발걸음을 돌리곤 했던 그의 배우자는 민일영 대법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