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말은 정부내에서도 금기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져들 것이다.”
기획재정부 1층 로비에서 만난 한 고위급 인사의 말이다. 이 간부는 현재 한국경제의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1분기는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재정과 금융, 물가 등 한국 경제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재정부 간부가 흘리듯이 한 말이지만 재정부 고위 간부가 이같은 말을 내뱉었다는 것 자체가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이 매우 나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그플레이션은 경기침체(스테그네이션)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정부 당국자의 말처럼 스테그플레이션 전조 현상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불황기에는 물가가 하락하고 호황기에는 물가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올 초 한국 경제는 정 반대의 경우로 흘러가고 있다. 경제성장은 작년 4분기 대비 급락이 예상되고 물가는 좀처럼 안정될 기미가 없다.
올 1분기 경기후퇴가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에서 물가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은 스테그플레이션 상황이 전개되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외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마이너스’나‘0’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 것도 이를 방증한다.
실제 노무라증권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0.1%로 전망했다. 스위스 금융그룹인 UBS의 경우 1.9%로 전망했지만 상저하고의 흐름이라는 단서를 붙여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1분기 무역수지 적자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것은 한국 경제 마이너스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올해 3%대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 물가 역시 불안한 흐름세다.
경기 둔화에 따라 자연스레 잡힐 것으로 내다봤지만 대외 변수 등으로 인해 급등 가능성만 높아졌다. 정부에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책임제를 강행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것을 뜻한다.
급락이 예상되는 성장률과 자꾸 고개를 쳐드는 물가 압력은 악재가 끊이지 않는 대외 여건 때문이다. 현재 디폴트 가능성이 높은 그리스와 함께 포르투칼, 이탈리아 등 위기 확산이 최고조인 유럽과 이란 핵 위협에 따른 유가 불안 가중으로 스테그플레이션 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한국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보다 무서운 ‘슬럼프스테이션’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이는 그리스 디폴트의 현실화,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에 따른 유가 폭등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됐을 경우지만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정부 한 관계자는 “유럽발 재정위기 확산에 따른 안정화가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 등이 발생한다면 한국 경제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