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등 최근의 금융사기는 대부분 개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유출된 개인정보를 토대로 진행돼 대상이 광범위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과거 금융사기사건은 특정대상에 대해 진행됐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이 파급효과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장영자는 자금난을 겪는 건설업체에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제공하고, 대여액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시키고 뒷돈을 챙겼습니다. 이 어음을 시중에서 할인한 후 다시 굴리는 수법으로 6404억원의 어음을 유통시켰고 1400억원을 사기로 착복했습니다. 장씨는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항변했지만 어음이 한 바퀴 돌았을 때 어음을 발행한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른바 ‘장 여인 광풍’이 몰아쳤는데, 정계·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특히 경제계에 불어닥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금융혁명’으로 일컬어지는 6·28조치가 단행됐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사무총장이 물러나고, 법무부장관이 2번이나 교체됐으며, 이 사건과 관련해 31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올랐으나, 그 중 11명만이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다. 장영자·이철희 부부는 모두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된 뒤, 장영자는 복역 10년 만에 역시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장영자는 1994년 다시 100억 원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했고, 4년형을 받고 수감된 장씨는 1998년 8.15특사로 풀려났으나 2년만에 다시 구권(舊券)화폐 사기극의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결국 2001년 5월에도 220억 원대의 구권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세 번째로 복역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