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정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물꼬는 이회창 전 선진당 대표가 텄다. 그는 지난 9일 “나를 뛰어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대표직 전격사퇴를 선언했다. 그간 지역 맹주 역할을 자임해온 선진당의 1인 지배체제가 무너지면서 충청권을 둘러싼 새판짜기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 전 대표의 전격사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띠고 있다. 6.2 지방선거 패배 등 일련의 정치과정에서 드러난 위기감이 내년 총·대선에서의 생존 불안으로 비화되면서 그의 결단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 지배권의 정점에 있던 그가 2선으로 물러나면서 지역 영향력을 갖춘 외부 인사들의 진입공간을 넓혀주려는 의도가 크다고 선진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 이 전 대표는 사퇴 전날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를 찾아 “(심 대표의) 탈당 등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으니 복당해 다시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권선택 원내대표는 1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비켜설 테니 심 대표뿐만 아니라 이인제 의원과 정우택 전 충북지사, 이완구 전 충남지사 등 충청권에 영향력이 있는 이들은 다 당으로 들어오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 역시 충청권 재편의 필요성엔 공감하나 방식에 있어 확연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 대표의 복당 제안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던 심 대표는 “큰 당(선진당)이 작은 당(국민중심연합)을 흡수하는 형태의 이합집산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고, 이인제 의원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대중정당 건설”을, 정우택 전 지사는 “충청권이 전면에 나서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선진당 중심의 통합이 아닌 헤쳐모여식 제3지대 결집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여기엔 이상민 의원을 비롯해 선진당 일부 의원들도 심정적 동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기자에게 “선진당이 충청권을 대변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기존 인물 또는 정파 중심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이 전 대표가 물러났다고는 하나 1인 지배의 구조와 문화는 그대로”라며 “선진당은 통합을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를 비롯해 심대평, 이인제 등 누구든 주도권을 쥐려는 얄팍한 속내가 있으면 통합과 연대는 어렵다”고 말했다.
권선택 원내대표는 “선진당 중심으로 가느냐, 제3지대로 가느냐만 남았다”면서 “숨고르기를 거친 만큼 다음 주부터 공식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엔 각자도생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한국정치사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왔다는 점에서 충청권의 정계개편 향방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