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신공항 백지화 파동에 이어 과학비즈니스벨트, 한국토지주택(LH)공사 입지 논란으로 전국이 갈가리 찢겼지만 봉합은커녕, 지역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정치자금법 등 위원보신 입법은 일사천리로 처리하면서, 취득세 감면, 이자제한법, 주택법 등 민생현안을 놓고 여당은 여당대로 찢기고, 야당은 야당대로 갈라지며 양보없는 대결로 한치 앞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해도 제대로 대책을 하지 못해 축산농가가 피폐화되고, 관련 산업이 무너졌으며, 침출수로 제2, 제3의 피해마저 우려될 정도다. 전세가 폭등으로 무주택 서민들이 전세찾아 유랑생활을 해도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까지도 전·월세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EU FAT 비준동의안서 수십건씩 드러난 해석오류와 해외 공관장들의 ‘섹스스캔들’은 대체 대한민국이 제대로 영(令)이 서있는 나라인지 깊은 한숨이 나오게 할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치는 실종됐고 갈등을 조정 중재해야 할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리더십 부재와 무능. 무기력증을 드러내면서 국론 분열과 혼란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등 대한민국호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국책사업에 대한 현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는 갈등을 한층 키우고 있다. 표심을 의식한 신공항 건설 공약은 경제성이라는 이유로 백지화를 결정했지만, 갈등조정과 국민적 합의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신공항 입지 결정이 미뤄지면서 영남이 둘로 쪼개져 정면충돌했지만 정부에서 갈등을 조정하려는 노력은 전무했다. 경제논리를 앞세운 정부의 정책방향은 옳고, 지역의 반발은 정치적 이해에 기반한 것으로 소통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벨트와 LH공사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과학벨트 입지선정위원회가 가동되기 전부터 분산배치론이 정부내에서부터 흘러나오면서 충청·영남·호남 분열을 촉발시키는 등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역 갈등과 정치적 대립, 정부에 대한 신뢰 위기의 심화는 컨트롤타워 부재의 결과물이다.
이렇다보니 당정청간 엇박자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난달 추진키로 한 3·22 부동산 대책이 여권 내 이견과 야당·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좌초 위기를 맞았다. 취득세 감면으로 줄어드는 지방세수를 올해 당장 국고로 보조해 주는 방안에 대해 지자체와 일부 여당 의원들이 난색을 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지자체는 현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한 지자체와는 한마디 상의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강행한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방호 대통령 직속 지방분권촉진위원장도 “지방자치단체와 아무런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전형적인 중앙집권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의 영(令)이 안서는 모습이다.
여야간 대결은 마주보는 폭주기관차다. 민생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는 대의정치 실종과 여의도 정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생국회로 규정했던 2월 임시국회는 주요법안을 놓고 팽팽한 대치 전선을 이어가다 결국 각종 민생법안은 4월로 미뤘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 폐지’ ‘전·월세상한제’ ‘이자제한법’ 등에서 이견차를 보이면서 여야간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여당이 내세운 4월 국회 우선처리 법안에는 여야간 입장 차가 큰 한·EU FTA 비준안과 북한인권법이 포함돼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논란은 불파기한 상황이다.
청와대는 갈등조정을 상실한지 오래고 여야간 대치는 지속되고 있으며, 국책사업으로 인해 지역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암울한 앞날을 가늠케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가)국민적 합의를 이끌 수 있는 동의 절차도 없었고,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권을 무시하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의원들은 지역이기주의에 빠졌고, 정당도 말을 안듣는 상황으로 정국이 총체적으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