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 발전 사고로 일본이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세계 다양한 산업과 기업들이 그 동안 얼마나 일본 열도에 의존해 왔는지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일본의 대지진이 전세계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 여파가 기업의 판매활동에 타격을 준 후 소비심리까지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WSJ은 수요면에서 세계 경제활동의 9% 가까이를 차지하는 일본이 대지진의 충격을 입으면서 특히 공급면에 미치는 여파가 예상외로 크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첨단기술 부품 공급량이 전문가들이 당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아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완성품을 조립하는 기업에 미치는 타격도 크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의 60%는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대지진 여파로 세계 생산의 4분의1이 줄었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프린트기판(PCB) 제조에 사용되는 ‘BT레진’이라는 재료의 일본 점유율은 90%에 이르러 상황은 심각하다.
하지만 반도체보다 더 절박한 업종도 있다.
자동차 업계는 히타치제작소의 자회사인 히타치 오토모티브시스템즈의 기타칸토 공장이 지진 피해를 입으면서 에어 플로 센서 조달이 어려워져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에어 플로 센서는 엔진으로 이송되는 공기의 양을 측정하는 장치로, 히타치 오토모티브시스템즈가 세계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작은 부품의 위력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루이지애나주 공장과 프랑스 PSA 푸조시트로엥의 유럽내 거의 모든 공장의 생산을 멈추게 했다.
또 자동차의 고광택 안료인 '시라릭(Xirallic)'을 독점 생산하는 일본의 한 공장이 지진 피해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자동차 업계에 또다른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고급승용차 등에 사용되는 고휘도 안료인 시라릭의 부족 사태가 빚어지면서 포드, 크라이슬러, BMW, 도요타, GM 등 시라릭을 사용하는 자동차 업체들은 이를 대신할 제품을 찾느라 비상이 걸렸다.
시라릭은 자동차용 도료에 첨가돼 자동차 표면에 광택이 나게 해주는 안료로, 독일 화학업체 머크 KGaA가 소유한 일본 오나하 공장에서만 생산된다.
이 때문에 다양한 기업들이 이번 대지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서플라이체인(공급망)에 대한 영향을 파악하고,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나 공급처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WSJ은 대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의 부품 공급업체가 얼마나 빨리 복구되는가가 관련 업계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