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부터 금융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한국증시의 기준이 되는 코스피지수가 종가 기준으로 최고 기록을 3년2개월여 만에 갈아치우며 산뜻한 출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100포인트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초기 몇년간은 횡보세를 이어가다 1986년 첫 도약의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특히 서울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으로 이어졌던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 증시는 매년 68%, 98%, 70%씩 급 성장세를 이어가다 1989년 4월1일(1007.77) 사상 처음 1000포인트를 돌파하게 됩니다. 9년만에 10배 성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 효과’로 3년간 지속된 두 자릿수 경제성장이 전국적인 주식투자 붐을 몰고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곧 이어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부양책으로 평가되는‘12·12 증시부양책’이 발표되지만 오히려 투신사 부실과 깡통계좌 양산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버블이 꺼지면서 1992년 8월21일 459.07선까지 3년반 동안 증시는 내리막길만 걷게 됐습니다.
이후 다시 상승세를 보이던 코스피지수는 1995년 11월 1000포인트를 다시 회복하지만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7년 한보, 기아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끝내 IMF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되면서 코스피지수는 1998년 6월 227.37까지 급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한도 완전 폐지로 글로벌 자본이 본격 유입되고 ‘바이코리아 펀드’ 등 기관 매수가 더해지면서 1999년 7월 역대 세 번째로 1000포인트를 돌파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우사태에다 정보기술(IT) 붐에 편승했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2000년 9월 코스피지수는 다시 500선 밑으로 무너졌습니다.
2005년 이후 증시는 주식형펀드 열풍을 거쳐 2007년 10월 2000포인트 돌파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2000포인트 돌파의 기쁨도 잠시,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쇼크가 본격화되면서 2008년 10월 1000포인트 밑으로 다시 한번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경기회복에 힘입어 3년2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기에 이른 것입니다.